농축 우라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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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계대전에서 핵 폭탄이 이용되는 장면은 1914년에 발표된 SF 소설에 처음 묘사됐다. 영국의 허버트 조지 웰스는 『자유로워진 세계(The world set free)』라는 책에서 엄청난 핵 에너지를 이용한 무기가 개발돼 미국과 독일·프랑스 등이 싸우는 전쟁에 사용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미국의 물리학자인 레오 질라드가 핵 분열을 이용해 폭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깨달은 것은 우연치 않게 읽은 이 소설 때문이었다. 히틀러의 박해를 받아 미국으로 이주한 질라드는 독일 과학자들이 나치스와 협력해 핵폭탄을 제조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아인슈타인에게 히틀러보다 먼저 무기 개발할 것을 촉구했다. 전쟁이 싫었던 아인슈타인은 이 제안을 못마땅히 여겼다.

그러나 얼마 후 루스벨트 대통령은 아인슈타인으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우라늄 원소는 가까운 장래에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변화될지 모릅니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신경 써야 합니다. 필요시에는 신속한 행동을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핵개발을 진언하는 편지에 서명한 해가 1939년이었다.

우라늄을 농축해 핵폭탄을 제조하는 작업은 1941년 12월 6일 '맨해튼 계획'에 따라 개시됐다. 일본군이 미국 진주만을 공격하기 바로 하루 전이었다. 그로부터 4년 후에 우라늄 235 폭탄이 일본의 히로시마에, 플루토늄 239 폭탄이 나가사키에 각각 투하됐다. 원자핵 분열에 의해 얻어지는 에너지가 얼마나 가공할 만한 것인지 문명 세계에 여지없이 공개됐다. 천연 우라늄에 포함돼 있는 우라늄 235의 비율을 95% 이상으로 높이는 농축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핵폭탄을 미국 과학자들은 '짐승'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렀다.

세상은 바뀌었다. 그런데도 독재자와 테러집단들이 농축 우라늄 확보를 위해 보이는 공포의 집념은 상상을 뛰어 넘었다. 빈 라덴은 이미 93년부터 알 카에다 조직을 통해 비밀리에 이를 구입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91년 소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상당량의 농축 우라늄이 실종돼 국제적인 테러 위협은 계속 증가해 왔다. 지난해 초에는 고농축 우라늄이 흑해 부근의 핵시설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보고서가 미 에너지부에서 제출되었다. 농축 우라늄 추적을 둘러싼 미 첩보기관의 활동도 강화되었다. 지난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시작됐을 때 파키스탄은 핵물질 도난을 우려해 이를 긴급 이동시킬 만큼 사태는 악화됐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무기 개발 계획도 충격을 주고 있다. 과연 어떤 방법으로 고농축 기술을 확보했을까. 또 미국은 어떻게 정보를 포착했을까. 수수께끼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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