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국회 파행'질타 잊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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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하루 빨리 이성을 되찾아 국회로 돌아와 막중한 국사(國事)를 협의 처리하길 요청한다. 무한정 국사를 미룰 순 없다."

요즘 파행을 빚고 있는 국회 얘기가 아니다. 1998년 9월 민주당 전신인 국민회의 조세형(趙世衡)총재권한대행이 한나라당을 향해 한 말이다. 현 정권 초기였던 당시 한나라당 의원 36명이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긴 뒤 한나라당이 "정당 파괴"라며 한동안 정기국회를 거부했던 때의 얘기다. 趙대행은 이런 한나라당을 비판하며 "우리는 야당에 대해 공작하고 매수한 적 없다. 의원들이 한나라당에 너무 실망해 이탈한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로부터 4년여가 지난 14일 민주당 전용학 의원이 한나라당으로 옮겼다. 상황은 고스란히 역전됐다.

민주당은 "정치질서 파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그날부터 국회 대정부 질문을 중단했다. 한화갑 대표는 파행 사흘째인 16일 의원총회에서 "과거 공작 전문가들을 다 옮겨놓은 한나라당은 공작 본당"이라며 "국회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맞서 서청원(徐淸源)대표는 "우리당 의원들을 36명이나 공갈·협박해 데려가 놓고 이제 자기당이 두세조각 나서 못있겠다고 나온 의원들 때문에 국회를 파행시키는 정당은 12월 선거에서 목포 앞바다에 버리자"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민주당에 묻고 싶은 게 있다. 연일 탈당을 논의하고 있는 민주당 내부의 비노(非盧)·반노(反盧) 의원들이 탈당해 정몽준 의원의 신당에 들어가거나 연대할 경우 민주당은 鄭의원을 향해 정치공작이라고 비난할 것인가. 탈당파 의원들에 대해 당 지도부가 비난하거나 적극 만류하는 것 같지도 않은 게 현실이다.

물론 한나라당이 철새 정치인을 받아들인 것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정도는 田의원 탈당 충격이 컸기 때문이라고 쳐도 계속 국회를 거부하는 것은 '실질적 집권당'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현재 국회엔 6백12건의 법률이 계류 중이다.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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