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선거가 안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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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권교체를 두번 이뤄 냈는가.'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의 저서 가운데 『제3의 물결:20세기 말의 민주화』 (1992)가 있다. 1970년대 이래 세계 각국의 민주화 현상을 비교 분석한 책으로 한국에 관한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민주화가 얼마나 다져졌는가를 재는 척도의 하나로 '정권교체 2회 테스트'를 제시한다. 민주화 이행기에 정권을 잡은 한 정당 또는 정치집단이 다음 선거에서 패해 정권을 넘겨주고, 권력을 잡은 새 정권이 그 후의 선거에서 다시 평화적으로 정권을 넘긴다면 그 나라의 민주화는 공고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두번의 정권교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한 사회의 주도적인 두 정치지도자 집단이 선거 패배 시에 권력을 내놓을 만큼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이 테스트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다. 예컨대 일본을 보자. 2차 세계대전 후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계속되면서 일본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정권교체를 이뤄낸 적이 없다. 사회당이나 신생정당 의원이 총리로 선임된 적이 있지만 모두 자민당이나 그 파생정당과의 연립에 의한 것이었을 뿐이다.

우리 경우는 어떤가. 지난 대선(大選)을 통한 현 정부의 등장은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였다. 김영삼(金泳三)정부가 3당합당에 의해 집권한 것을 반쪽의 정권교체로 본다면 1.5회의 정권교체를 경험한 셈이다. 어떻든 정권교체 2회 테스트를 아직 넘기지 못하고 있다.

정권교체가 민주화 과정에서 어떤 목표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일본의 경우처럼 정권교체가 없었다고 해서 곧 민주화가 안됐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정권교체를 두번씩 이룬다는 것은 민주화가 확고하다는 상당한 징표임에 틀림없다.

대선을 두달 가량 앞둔 지금의 정치상황을 보면 정권교체 2회 테스트가 결코 간단치 않은 것임을 실감하게 된다. 상호 비방은 살벌하기 그지없다. 한편에서 후보자 토론을 중심으로 정책이 거론되지만 엄청난 의혹들이 폭로되면서 묻혀버리고 만다. 왜 이런 것인가.

대체로 대선에서 후보자 간의 정책차이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선은 승자 독식의 게임이다. 득표만큼의 몫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승자가 아니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때문에 특정 부분이나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는 다수의 공통된 이익을 표방하지 않을 수 없다. 좌든 우든 중간 방향으로 정책방향을 조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런 일반론으로 우리의 유별난 선거전 양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적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선거전이 비방과 폭로로 뒤덮이는 것은 그만큼 정치권력을 둘러싼 불법과 비리가 많다는 개연성을 보여준다. 특히 집권측의 불법적이고 자의적인 권력행사가 없다면 이렇게 될 까닭이 없다. 때로 불법적 권력남용이 있더라도 그때마다 검찰이나 관계기관에 의해 시비가 가려진다면 선거전이 의혹 드러내기로 압도되지는 않을 것이다. 도전자측으로서도 집권측의 비리를 드러내는 데 몰두할 뿐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일에는 소홀해진다. 요컨대 평소에 법치(法治)가 되지 않으니 선거도 정상 궤도를 벗어나게 된다.

둘째, 선거전 대결의 강도(强度)에서 도를 지나치고 있는 것은 정권교체 여부의 의미가 왜곡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집권 여부가 국가발전 전략의 실현 기회를 갖느냐 여부보다 패배했을 때의 손실 또는 피해가 직결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한, 권력을 지키려는 쪽이나 도전하는 쪽이나 모두 필사적으로 된다. 업보(業報)를 두려워 하는 것이다.

셋째, 유권자들도 문제다. 후보자 지지도 조사에서 아직도 지역 편향이 확연하다. 지역주의가 지속되는 한 정책 위주 선거는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의 대선은 정책 경쟁보다 일종의 사정(司正)기능을 하고 있다. 이 과도적 단계를 넘으려면 우선 법치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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