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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폭탄테러]"알 카에다·印尼 단체 연계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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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발리 참사를 수사 중인 인도네시아의 치안당국은 알 카에다를 사건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압둘 잘릴 국방장관은 14일 외신기자들에게 "알 카에다의 연계망이 국내에 실제로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또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고 현지에 수사진을 파견해 공조수사를 펴고 있는 호주의 존 하워드 총리도 "법률적 의미의 증거는 없지만 알 카에다가 테러를 명령했거나 부추겼다는 강한 의혹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단정적 물증은 없지만 알 카에다가 가장 유력한 용의선상에 오른 수사 대상이라는 의미다. 발리 사건 직후 강한 어조로 테러리스트를 비난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발언을 감안하면 알 카에다 소탕을 위한 대규모 군사작전이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동남아로 무대를 옮겨 본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알 카에다가 동남아 지역에 거점을 둔 토착 이슬람교 무장단체나 원리주의 조직들과 직·간접으로 연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국제 정보당국이 파악하고 있던 것이다. 9·11 테러의 실행범 가운데 일부가 범행 몇달 전 말레이시아에서 모임을 가진 것을 비롯해 국제 테러조직원들이 수시로 동남아시아를 드나든 사실이 확인됐다.

테러단체나 무장 게릴라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이다. 인도네시아에선 지난 한 해 동안 30여건의 크고 작은 폭발물 테러가 있었다. 필리핀의 휴양지에선 외국인 관광객 납치사건이 2년 전부터 빈발하고 있다. 두 나라는 각각 1만3천개와 7천개의 섬으로 구성돼 있어 치안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고, 누적된 빈부격차와 정치 불안으로 이슬람 원리주의가 뿌리내리기 쉬운 환경이 갖춰져 있다.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섬에선 알 카에다의 것으로 추정되는 군사훈련 캠프가 발견됐다.

알 카에다와의 연계가 드러난 가장 대표적인 조직은 인도네시아의 고도 족자카르타에 본부를 둔 제마 이슬라미아(JI)다. 미국은 알 카에다의 2인자 자와힐리가 2년 전 현지를 방문, JI의 대표 아부 바카르 바시르를 만났으며 JI의 핵심 조직원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원정 훈련을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기독교도들에 대한 공격을 표방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또 다른 원리주의 단체 라스카르 지하드의 지도자 오마르 탈리브는 아프가니스탄의 대 소련 전쟁에 참전했던 무자헤딘 출신이다. 그러나 JI의 대표 바시르는 이르면 17일 자신을 테러의 주모자로 보도한 타임지에 대한 명예훼손을 가리기 위해 경찰에 출두하겠다며 혐의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이밖에 남부 민다나오섬에서 활동 중인 게릴라 단체 아부사야프를 소탕하는 데 골치를 앓고 있다. 급기야 지난 1월 미국 특수부대와 필리핀군이 합동작전을 펼쳐 아부사야프 세력은 급격히 축소됐다. 또 동남아 국가 가운데 가장 치안이 완벽하다는 싱가포르에서도 테러조직이 암약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싱가포르 주재 미 대사관 테러계획을 모의하다 체포된 13명 가운데 8명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훈련을 받았던 사실이 드러났다.

국제 테러 전문가들은 이번 발리 사건도 알 카에다가 동남아 지역에 광범위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현지 조직망과 협력해 감행한 사건인 것으로 보고 있다.

예영준·정재홍 기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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