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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억새山行>억새 하늘밭서 은빛 꿈을 꾸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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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만복대(전북 남원시·1천4백33m)=지리산의 봄은 바래봉과 세석평전의 철쭉이 대표한다면 가을은 피아골 단풍과 함께 만복대 억새가 장식한다.

만복대는 지리산 서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정령치(1천1백72m)에서 고도를 2백50m만 올리면 되므로 어렵지 않게 억새를 감상할 수 있는 가족산행지로 제격이다. 만복대∼고리봉(1천2백48m)의 3㎞ 구간은 지리산 최고의 억새 능선으로 손꼽힌다.

특히 만복대에 오르면 노고단에서 시작해 반야봉~명선봉~덕평봉~영신봉~제석봉을 거쳐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주 능선이 한눈에 들어와 조망도 뛰어나다.

정령치에서 만복대까지는 쉬엄쉬엄 걸어서 두시간이면 충분하다. 현재는 20∼30% 정도만 개화된 상태여서 다음 주말에 찾아가야 만개한 억새꽃을 감상할 수 있다.

▶천관산(전남 장흥군 관산읍·7백23m·사진)=다도해를 끼고 있는 산치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지만 천관산에서는 유독 다도해의 풍광보다 바위가 펼치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관산벌에서 올려다 본 천관산에는 그저 고만고만한 바위 몇개만이 서 있다. 그러나 높이를 올릴수록 바위들은 마치 신들이 펼치는 경연처럼 거대한 조각품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산 위에는 아육왕탑·구룡봉·불영봉·천주봉 등 신만이 알듯한 바위들의 천상 화원이 펼쳐져 있다. 그 아름다움에 흠뻑 젖다보면 노래 한구절쯤 절로 나온다.

호남정맥에서 가지친 탐진지맥이 남해로 빠지기 전 크게 용틀임한 것이 천관산이다. 지리산·월출산·내장산·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다.

천관산 정상인 연대봉에서 구룡봉으로 이어지는 10리 능선길에 올라서면 산에 누가 있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감출 곳이 없다. 천관산 등산로는 10여코스가 있다. 그러나 모든 길은 연대봉으로 이어진다. 총 산행시간은 4시간. 제5회 천관산 억새제가 20일 천관산 정상 부근의 10리 억새 능선길에서 열린다. 장흥군청(061-863-2509)

은빛꿈 너울대는 억새밭에 오후의 햇살이 엷게 비친다. 가녀린 허리를 꼿꼿이 세운 억새는 서해를 빠져나와 빛고을 광주의 무등산(1천1백86m)을 감아도는 하늬바람에 온 몸을 내던진다. 속절없이 쏟아내는 한숨에 마음마저 흔들린다. 꽃이 오므라들 듯 10월도 중순을 넘어섰다. 능선길에 흐드러지게 핀 억새는 산을 '갈색 추억'으로 곱게 장식하며 가을의 전설을 잉태한다. 남부 지방부터 시작해 한달여 동안 피는 억새꽃은 가을산에서 맛볼 수 있는 최상의 선물.

광주의 동쪽을 둘러싸고 높이 솟아오른 무등산은 암울했던 시절 광주시민의 한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다. 그 시절 빛고을 사람들은 사랑과 미움을 속세에 묻어둔 채 정상에 올라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울분을 함성으로 풀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한줄기 메아리 되어 영산강을 따라 서해 바다로 흘러들어 갔다.

이웃한 담양은 16세기 정철 송강이 꽃피운 가사문학의 산실답게 수많은 사대부의 작품이 전해오고 있다. 모순된 현실정치 속에 뜻을 못 이루고 낙향한 선비들이 세운 누각과 정자가 60여채나 될 정도여서 '국내 정자문화의 1번지'로 불리고 있다. 무등산은 이처럼 광주 시민들의 문화적 고향이자 정신적 지주로 영욕의 세월을 같이 했다.

호남정맥은 세번 솟으며 묏산(山)자를 이루고 있다.백두대간에서 금남 호남정맥이 시작되는 장안산(전북 장수군·1천2백37m)이 가장 높고 섬진강으로 떨어지는 백운산(전남 광양시·1천2백18m), 무등산의 순으로 이어진다.

호남정맥이 전남 순창군의 강천산에서 담양호를 애돌아 남쪽으로 뻗기 전 솟구쳐 오른 것이 무등산이다. 무등산에 있는 입석대·서석대·규봉은 웅장하면서도 뛰어난 조형미를 갖추고 있어 '3대 석경(石景)'으로 불린다. 그 중 입석대는 수십 개의 돌기둥을 깎아 세워 병풍처럼 펼쳐 놓은 장관이 등산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신이 천상(天上)에 빚어 놓은 예술작품이라 할 만하다.

무등산에서 억새를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는 안양산 정상·백마능선·장불재·신선대 능선 등이 손꼽힌다. 대표적인 산행 코스는 ▶증심사▶산장▶화순 등이다. 증심교에서 토끼등을 거쳐 동화사터에 오르는 등산로는 무등산에서 가장 가파른 길이어서 증심사코스가 제일 힘들다. 토끼등에서 40여분을 올라야 동화사터에 닿는다.

이 곳에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임금의 옥새 같다 해서 이름 붙여진 새인봉이 있다. 광주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바위벽이다. 그리고 동화사터나 중머리재에서 한참 발품을 팔다보면 넓은 억새평전을 이루고 있는 장불재에 닿는다. 산장~꼬막재~신선대 삼거리~규봉암~장불재~용추 삼거리~중머리재~토끼등~증심사로 돌아오는 약 11㎞의 등산로는 무등산 산행에서 가장 길면서도 억새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 무등산 억새는 이번 주말이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여진다.

광주김치축제(062-606-3343)가 16∼20일 광주광역시 시립박물관에서 열려 팔도의 김치를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무등산=김세준 기자

sj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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