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작] 유대인 아픔 담은 '슬픈 코미디' -나의 아름다운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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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건 비정상이 정상을 지배하는 시대라구." 우리는 세계대전 중 유대인이 감내했던 고통을 기억한다. 소설과 영화에도 그 흔적은 짙게 남아 있다. 명작 '안네의 일기'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까지. 인본주의와 역사적 교훈이 담겨 있음엔 분명하지만 "또 유대인 이야기야?"라는 불평도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나의 아름다운 비밀'은 같은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눈을 피해 도피하는 유대인의 이야기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 영화는 기막힌 코미디다!

체코의 한 마을, 조셉과 마리 부부는 아이 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 유대인 수용소를 탈출한 다비드를 발견하게 된 조셉은 집의 밀실을 내준다. 다비드는 이 부부와 위태로운 동거생활에 들어간다. 나치의 앞잡이인 조셉의 친구는 이들 부부에게 수상한 낌새를 챈다. 부부의 유일한 탈출구는 아이를 갖게 돼 감시망에서 벗어나는 것. 그런데 조셉에겐 아이를 가질 능력이 없다.

'나의 아름다운 비밀'은 호흡이 느린 영화다. 체코영화인 탓에 언어는 낯설고 할리우드 영화의 빠른 '속도'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럼에도 의외의 재미가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는 스토리텔링의 묘미를 맛보게 한다. 유대인과 그를 숨겨주는 부부 사이에 벌어지는 사소한 에피소드가 재치있다. 그들은 서로 의심하고 챙겨주며, 심지어는 사랑하기까지 한다. 영화 줄거리는 상투적인 것에서 출발해 의외의 방향으로 돌진한다. 통쾌한 희극이 실은 '비극'과 꽤 가까운 거리에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어느 해외 비평가는 "'나의 아름다운 비밀'은 체코 영화의 황금기를 되돌려놓은 작품"이라고 격찬하기도 했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었다. 절대 추천작. 원제 Divided We Fall. 2000년작. 감독 얀 헤벡. 출연 안나 시스코바.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sozin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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