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구입권·콘도 이용권·자기계발비 "복지혜택 내맘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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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일제당 인사팀 이정일(33)대리는 부모 집에서 양친을 모시고 살아 회사의 주택자금 대출을 받을 자격이 없다. 아이가 아직 네살이어서 자녀학자금 지원도 못 받는다. 그렇다고 그런 혜택을 받는 직원들과 비교해 손해를 보는 건 아니다.

대신 자사제품 구입권·선물 구입권·콘도이용권에서부터 문화생활 보조비 지원, 자기계발비 지원 등 회사가 정한 다른 메뉴들을 자신의 복지수당 범위 내에서 마음대로 골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李대리는 자신의 2년치 복지수당 1백10만여원 중 상품 할인구입권을 이용해 회사 구판장에서 1백만원짜리 세탁기를 샀다. "남은 돈으로는 올 겨울 회사 지정 콘도에서 가족들과 스키를 즐길 계획입니다."

회사에서 받는 복지수당 규모 안에서 개인이 여러 혜택 중 일부를 필요에 따라 챙기는 '선택적 복지제도(카페테리아 제도)'가 확산하고 있다. 직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획일적인 복리후생 체계의 불평등 시비 소지도 없앨 수 있는 소위 선진국형 사원복지제도다.

1997년 외국계 기업인 한국IBM이 처음 시작한 뒤 삼성생명·제일제당·LG유통·동양제과·SK텔레콤·한국가스공사·한국전력공사 등 17개 공·사기업이 이 제도를 운영 중이다.

한국가스공사의 김종만 노무복지부장은 "IMF(국제통화기금)사태 이후 복지예산이 5% 정도 줄면서 이 제도를 도입했는데 그 뒤 직원들의 만족도가 훨씬 높아졌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포스코·베니건스 등 기업들과 함께 경찰청·기획예산처·중앙인사위 등 3개 정부기관도 이를 실시한다. 2004년부터는 모든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으로 확대된다.

포스코 홍보팀 문광국 과장은 "연 52만원 한도 내에서 다양한 복지혜택을 골라 사용하게 할 것"이라며 "직원들의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아직은 경영사정이 괜찮은 대기업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회사마다 노사협상의 주요 안건으로 다뤄지면서 빠른 속도로 정착할 전망이다.

각자의 사정에 따른 맞춤형 복지모델을 짜서 제공하는 벤처기업도 생겼다. 지난해 2월 영업을 시작한 이제나두(www.exanadu.com)는 건강검진·콘도예약·신용대출·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를 조합해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에버랜드·호텔신라 등 70개 회사에 인터넷으로 제공한다.

노동부 심경우 근로복지과장은 "이 제도를 장려하기 위해 도입기업에 세제혜택을 주도록 관계법령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무영 기자 m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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