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루사' 수재민 주택 복구 지연 컨테이너에서 겨울 날 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7일 오후 20여 채의 컨테이너 하우스가 밀집돼 있는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대동2리 이재민촌.

대형 고무 물통과 빨래 건조대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곳에서 빨래를 하던 김태순(73)할머니는 "5.5평짜리 컨테이너에서 6명이 새우잠을 자는 것은 견디겠지만 뜨거운 물도 없는 곳에서 겨울을 보낼 일이 아득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태풍 루사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의 주택 복구가 늦어지면서 대부분의 이재민이 임시 숙소인 컨테이너 하우스나 친지집에서 겨울을 나야 할 처지에 놓였다.

강원·충북·경북도와 각 시·군 등은 12월 중순까지는 주택 복구를 완료한다는 계획이지만 ▶정부의 지원금 지급 지연▶부지 마련 등 해결돼야 할 문제가 적지 않아 연내 입주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주택 복구비의 60%는 이재민이 직접 융자받아야 하고 나머지는 국고나 지방비로 충당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지원금 전달이 늦어지는 등 자금 마련 작업이 순조롭지 않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강원도에서 집을 새로 짓거나 보수해야 할 이재민 가구수는 모두 4천5백15가구. 이중 7일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은 1천4백49가구다.

나머지 이재민은 건축비가 없어 복구 공사를 시작할 엄두조차 못낸다. 공사가 진행 중인 집들도 준공이 되려면 최소한 2∼3개월이 더 걸리는 데다 겨울철에는 공사 중단이 잦아 컨테이너에서 겨울을 나야 할 전망이다.

충북도 내에서 가옥이 파손된 이재민 2백15가구 중 현재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는 주민은 1백18가구 2백90명에 이른다. 마을 주민 전체(32가구)가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는 영동읍 예전리의 김진선(70)씨 가족은 컨테이너 한 칸에서 7명이 생활한다. 아들 부부와 손자는 겨울이 오기 전에 고향을 떠나기로 했다.

경북 지역의 경우 1백48가구가 임시 주거용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조립식 건물 한 채가 완공됐고, 38가구는 이제 막 짓기 시작했다. 나머지는 집터가 정리되지 않아 해당 주민들은 컨테이너에서 겨울을 보내야 한다.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컨테이너에서 네 식구가 살고 있는 이외술(47)씨는 "빨래터와 온수공급 시설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릉시청 허가민원과 이정수 과장은 "건축 기간과 비용 등을 감안해 스틸 하우스를 권장하고 있고, 공동 주택 건립도 고려 중"이라며 "그러나 공사 기간이 동절기와 겹쳐 복구 작업이 마무리되려면 1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홍창업·홍권삼 기자

hongup@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