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과격파 '한국인 납치' 위협 왜 계속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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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납치 성명에 대한 기사가 실려있는 아랍어 인터넷신문 무팍키라 알이슬람(이슬람 쪽지). 10일 오후 9시(사우디아라비아 현지시간)에 오른 기사는 한국군 철수를 호소하는 고 김선일씨 사진을 담고 있다. 제목은 '서울, 이라크에서 한국인 2명 납치 관련 정보보고 진위 파악 중'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은 테러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9일 공개된 '이라크에서 한국인 2명 납치' 주장은 다행히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납치 성명에서 "수시간 내에 인질들 모습을 공개할 것"이라고 지난 6일 예고했지만 11일까지도 아무 일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장난성' 위협의 파장은 작지 않다. 외교통상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가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으며 국내 언론도 대대적으로 보도해 한국민의 불안감을 키웠다. 이처럼 잇따라 테러위협을 가하는 자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집트 카이로의 정치.전략연구소의 테러전문가 디아 라슈완 박사는 "중동 내 과격무장단체와 과격주의 지식인들의 사이버 테러"라고 설명했다. 간단한 인터넷상 테러위협이 결국 한국 내에 공포감을 조성하고 이라크 무장세력에게 한국에 대한 공격을 부추기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는 얘기다.

◆ 끊이지 않는 위협=6일 발표된 '이라크 이슬람성전조직' 명의의 한국인 2명 납치 성명은 올 들어 첫 테러위협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 같은 위협은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해 한국과 한국인을 공격하겠다는 인터넷상의 위협은 7건에 달했다. 김선일씨가 살해당한 다음달인 7월 9일 이라크에서 운영하는 '알바스라' 인터넷 사이트는 미국의 물자를 수송하는 한국의 해운업계를 공격하겠다는 위협의 글을 게재했다. 사흘 뒤인 7월 12일에는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리스트가 항공기를 이용해 국내로 잠입할 것이라는 내용의 e-메일이 공개됐다.

10월 1일에는 알카에다 2인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육성녹음 테이프를 통해 저항세력에게 공격을 촉구했다. 한국을 포함한 서방의 십자군 국가들이 이슬람 세계를 침공했다고 비난했다. 이후 10월 10일과 18일에는 동남아 알카에다 조직망이라는 '하무드 알마스리'라는 이슬람 순교자 단체가 나섰다. "2주 내에 이라크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했다. 12월 22일과 28일에는 이라크 북부 최대 무장단체인 '안사르 알순나군(軍)'이 아르빌의 한국군을 공격하겠다는 성명을 공개했다.

◆ 과격주의 언론도 동참=이 같은 위협은 물론 실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국민을 긴장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조성하고 파병에 대한 국민의 불만도 고조시켰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위협 글과 성명은 중동권 내 과격세력들에게 한국과 중동의 부정적인 관계를 상기시키고 한국 측을 공격할 것을 간접적으로 촉구한다. 실제로 일부 과격주의 언론매체가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9일에 공개된 납치관련 성명과 한국의 반응에 대해 중동의 주요 언론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저항단체의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성명도 아니었고 방송이나 통신사에서 전달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슬람 과격주의 인터넷 뉴스사이트인 '무팍키라 알이슬람(이슬람 쪽지)'은 10일 성명 내용과 한국 정부의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도했다. 중동 내에서 잘 알려진 이 인터넷 신문은 "무장단체의 인질납치 성명으로 한국이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동맹국들에 도움을 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관련 사진으로는 지난해 6월 일신과 성전에 납치돼 철군을 호소하는 김선일씨 모습을 게재했다. 고(故) 김선일씨 사건의 악몽을 떠올리며 긴장하는 한국의 모습을 전하기 위해서다.

기사의 마지막 부분은 상당히 자극적이다. 3600명에 달하는 한국군이 다국적군의 일부로 '이라크 점령'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 중 셋째 규모라는 것도 강조했다. 또한 한국군 주둔지가 이라크 북부 아르빌이라는 사실도 빼놓지 않고 저항단체들에 알려줬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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