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나쁜 대통령'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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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월드컵 3,4위전에서 한국팀이 패배한 다음날이었다. 한 라디오의 토크쇼에서 어느 코미디언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축구가 시작되기 전에 한국이 질 줄 알았어요. 선수들은 기분이 좋아야 컨디션이 나는 법인데 그날 관중석 상석에 기분 나쁜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선수들이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상석에는 전두환·김영삼 두 사람과 DJ가 나란히 앉아 있었거든요."

이만하면 대한민국에 언론자유가 없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아마 15년 전, 20년 전에 이런 방송이 나갔으면 법석이 났을 것이다. 얘기한 사람은 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매를 맞았을 것이고, 방송사 사장과 편성책임자, PD는 줄줄이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언론은 너무나 노골적인 탄압을 받아왔고, 문민정부니 국민의 정부니 하는 이름을 붙인 정부에서도 교묘한 수법으로 언론에 간섭하고 간접조종을 시도했다. 물론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언론은 직·간접 탄압을 너무 오랜 세월 겪어왔다.

'기분 나쁜 대통령' 얘기는 한국 언론의 이 비극의 종말을 말해준다. 비극으로 말한다면 언론만이 아니다. 엄격한 규율 속에 생활했던 군인 출신, 또는 야당 투사 출신의 대통령이 모두 '기분 나쁜 대통령'으로 지칭되는 한국의 정치는 바로 비극이다. 그래서 청와대가 없고, 정당·국회가 없으면 역겨운 뉴스가 많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되었다. 정치에 대한 혐오증이 극도에 달한 것이다.

불만과 체념의 철학이기도 한 허무주의는 19세기 말 무정부주의와 연결돼 문학과 종교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과격한 집단행동의 한 기조이기도 했다. 또 문명에 대한 비판 정신도 높였지만 부정(否定) 이후의 지향점을 갖지 못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그래서 여론조사에서는 무응답자가 많고, 투표율이 낮다고 설명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치에의 무관심은 거의 없다. 정치는 우리 생활에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주고 있어 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는 실정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다. 무관심은 결코 아니다. 짜증과 체념이다. 19세기의 허무주의는 붕괴적 감정과 데카당적인 대중행동을 유도했다. 21세기 한국의 정치적 허무주의는 무엇을 낳을 것인가.

허무주의는 가치와 권위를 부정한다. 혹시 민주주의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고 국가적 권위와 상징을 인정치 않으려는 풍조가 싹틀 위험은 없는 것일까. 그것이 테러나 퇴폐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정치에 대한 체념이 사회적 무기력, 국민적 활력의 상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바로 여기에 한국 언론의 새 과제가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의 억압을 견디고 이겨낸 한국 언론이다. 이제 충만한 자유의 언론을 어떻게 행하느냐를 생각할 때가 되었다. '기분 나쁜 사람들'이라는 감정만 표출할 것인가. "그래서 일이 잘 안될 줄 알았노라"고 체념만 토로할 것인가. 기분 나쁜 일도 많고 장래가 투명하지 않은 면도 많다. 그러나 사회적 활력을 위해 언론은 감각주의·비관주의를 배척해야 한다.

4·19 혁명 후 우리는 민주주의의 짧은 봄을 경험했다. 5·16 혁명 후에는 국가적 권위가 등등한 속에 우리는 빈곤을 이겨냈다. 근대화도 좋지만 정당성 있는 정부가 절실히 요구될 즈음에 체육관에서 뽑는 대통령선거는 끝났고 야당의 투사들이 정권도 잡아보았다. 한국의 정치사는 이토록 찬란하다.

기분 나쁘고, 짜증스럽고, 불쾌한 정치도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다. 기분 나쁜 감정을 털고, 불투명한 체념을 털어버리는 데에 언론이 기여해야 한다. 국민은 결코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다. 그 관심이 자꾸자꾸 밝은 쪽으로 쏠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막대한 공적자금의 부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다루기 힘든 북한, 뒤죽박죽이 된 남북관계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청탁불문·다과불문의 정치부패를 어떻게 응징할것인가….아무리 생각해도 간단치 않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이 더 중요하다. 어려운 과제라도 체념만 하고, 한국축구팀이 패배할 줄 알았다고 예측할 것이 아니라 해결의 길이 있다고, 축구팀은 선전할 것이라고 보는 것, 이것이 지금 한국 언론이 취해야 할 자세다.

축구팀이 선전할 것이라고 예측하자면 응원단식의 감정이 아니라 축구팀의 실력을 과학적으로 분석 평가해야 한다. 어려운 정치적 과제의 해결도 감정주의를 극복해 과학적·논리적 분석을 선행시켜야한다. 그리고 짜증스러운 정치 터널에도 끝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가야 한다. 그것이 정치적 허무주의를 이겨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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