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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경제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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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프로이센의 장군이며 군사 이론가였던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Vom Kriege)'에서 전쟁을 '다른 수단을 이용한 정치의 연장'으로 정의했다. 대화를 통한 외교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다른 수단, 즉 폭력을 동원한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단순히 정치적 동기에서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다. 가령 6·25가 이데올로기에 의한 전쟁이었다면, 중동전이나 인도-파키스탄의 전쟁은 아무래도 종교전의 성격이 강하다. 이보다 규모가 컸던 양차 세계대전은 민족주의에다 산업화에 따른 자원 확보·세력 균형 등 정치·경제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발발했다.

예일대의 도널드 케이건 교수가 '전쟁과 인간'에서 공포·이익 추구·명예욕을 전쟁의 3대 원인으로 꼽았지만 특히 요즘엔 이익 추구, 즉 경제 문제가 분쟁의 주요 원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금 미국이 준비 중인 이라크전도 석유 확보라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는데 대부분이 동감한다.

그러나 이처럼 경제적 이유에서 치르려는 전쟁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에 주름살이 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전 세계 증시가 연일 폭락하고 유가가 치솟는 것은 무엇보다 이라크전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면 정작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될까. 많은 경제학자들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무슨 전쟁특수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불안 심리가 주가나 유가에 이미 충분히 반영됐기 때문에 막상 전쟁이 터지면 조속한 해결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오히려 경기가 되살아 난다는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자문이었던 로런스 커들로 같은 경제학자는 "이라크전이 다우지수를 수천 포인트 상승시킬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니 기왕 할 거라면 빨리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징고이즘(전쟁옹호론)의 배경엔 91년 걸프전 당시의 '추억'이 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17% 떨어졌던 주가가 1주일 만에 전쟁이 끝나자 24%나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매파 경제학자가 간과하는 게 있다. 이번 전쟁이 걸프전처럼 단기간에 끝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S&P의 수석 연구원 데이비드 와이스는 전쟁이 장기화하고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면 미국이 그토록 걱정하는 더블 딥, 즉 W자형 이중 침체 국면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이 더블 딥이면 우리는 '따따블 딥'이다.

결국 선택은 자명한데도 전운은 짙어만 간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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