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 주가 부양 땐 선물·옵션 대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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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관(棺)속에 누워 있는 시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가 1일 증시안정기금의 이익금 2천5백억원으로 증시부양에 나서겠다고 밝힌 데 대한 서울 여의도 증권가의 반응이다.증시 전문가들은 증시안정기금의 수익금으로는 현재 급락세를 보이고 있는 주가를 떠받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주가 급락은 한국 경제·증시의 내부 문제라기보다는 미국 경제위기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재 증안기금 잔액 9천억원이 대부분 주식형태로 운용되고 있어 수익금 2천5백억원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보유 주식을 대부분 팔아야 한다. 즉 증시부양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을 처분하면 오히려 주가가 더 떨어질 수 있다.

또 정부가 증시안정기금으로 시장에 뛰어들면 주가를 인위적으로 왜곡시킨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증시안정기금은 1989년 12월 12일 정부의 이른바 '12·12 조치'의 일환으로 이듬해인 90년 5월 결성됐다. 89년 당시 정부는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주가를 부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증안기금은 특히 90년 한해 동안 주가부양을 위해 활발하게 움직였지만 별 실효를 보지 못했다. 실제로 90년 5월 8일부터 7월 14일까지 모두 1조원 이상이 투입됐지만 주가는 하락세를 멈추지 않았다.

<그래프 참조>

정부의 영향력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지만 증안기금을 통한 주가 부양에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9·11 테러 사태 직후 또다시 증안기금 투입을 검토했다. 당시 재정경제부는 5조∼10조원 규모로 증안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했지만 그 해 10월 들어 주가가 급등세로 돌아서자 슬그머니 없던 일로 해버렸다.

전문가들은 증안기금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하는 것은 물론 주가 왜곡에 따른 선물·옵션 가격 왜곡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선물·옵션이 없었던 만큼 주가 왜곡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이미 선물·옵션 거래 대금은 거래소와 코스닥시장 전체 매매금액을 압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증안기금으로 주요 대형 우량주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리면 선물·옵션의 기준가격이 되는 코스피200지수(주요 상장종목 2백개의 주가를 가중평균해 산출한 지수)가 왜곡된다.

이렇게 되면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컸던 선물·옵션 투자자가 오히려 수익을 보고 거꾸로 이익을 볼 수 있었던 투자자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교보증권 김석중 상무는 "이런 시장 왜곡 현상이 생기게 되면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이 크게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 봤다.

이희성 기자 bud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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