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업 테이프, 제3자 개입 흔적 '兵風 공작'드러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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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 의무 부사관 김대업씨가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장남 정연씨 병역 비리의 증거라며 검찰에 제출했던 녹취 테이프가 조작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검찰 수사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특히 테이프 조작 과정에 金씨 외에 다른 인사들이 개입한 흔적이 포착돼 정치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金씨 측은 올해 8월 30일 검찰에 두번째로 테이프를 제출하면서 "8월 12일 검찰에 냈다가 '판독 불능' 판정을 받은 첫번째 녹취 테이프와 같은 시기에 복사한 것으로 1차 제출 테이프보다 음질 상태가 더 좋은 원본"이라고 주장했다. 정연씨의 병역면제 의혹에 대한 전 국군수도병원 부사관 김도술씨의 진술이 담겨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수사 과정에서 이 테이프가 1999년 3∼4월 김도술씨 진술을 보이스 펜(볼펜 모양의 디지털 녹음기)에 녹음한 뒤 곧바로 테이프로 옮겨놓은 원본이 아니며, 곳곳에 조작된 흔적도 드러났다는 게 검찰의 전언이다.

◇수사 전망=검찰은 두번째 테이프에 대한 대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가 나오는대로 테이프 조작 경위에 대해 집중적인 수사를 벌인다는 방침이다. 국과수가 함께 조사에 나선 것은 조작 의혹에 대한 감정을 명확히 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검찰은 특히 金씨를 앞세워 '제3의 인사들'이 조직적으로 테이프 조작에 연루됐는지를 수사할 예정이다. 정연씨의 병역문제를 연결고리로 일부 인사들이 공작을 벌였는지 가릴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여러 정황으로 판단할 때 金씨는 단순히 녹취 내용을 폭로하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누가, 무엇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했는지가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측은 민주당 인사와 모 인터넷신문 간부 등의 개입설을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주장이 '소설 같은 내용'이라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한나라당 주장처럼 정계 인사 등이 개입했을 경우 정치권은 커다란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또 정계인사가 아닌 김대업씨 주변의 인물이 개입한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또 다른 배후설이 꼬리를 물 전망이다. 아무 의도없이 테이프 조작 과정 등에 개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누가 됐든 제3자 개입이 사실로 확인되면 병풍 수사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병풍을 기획한 배후를 캐는 쪽으로 수사 방향이 선회할 것"이라며 "이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특검제 도입 등으로 검찰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조작 정황 포착 과정=검찰은 8월 30일 金씨로부터 두번째 테이프를 전달받은 뒤 대검에 성문분석을 의뢰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金씨가 제출한 테이프의 제작번호를 살펴보던 중 첫번째 것과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소니코리아㈜ 직원 정모씨의 도움을 받아 문제의 테이프가 2001년에 제작된 소니사 제품인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金씨를 다시 소환한 뒤 "이 테이프 외에 또 다른 원본이 존재하느냐"고 묻자 金씨는 "원본이 틀림없다"고 말했다고 한다.金씨는 이어 "99년에 녹음한 원본이라면서 왜 2001년에 제작된 테이프가 사용됐느냐"는 검찰의 추궁에 "그럴리가 없다. 뭐가 잘못된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명쾌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는 게 수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金씨는 테이프 조작 의혹이 불거지자 "99년 보이스펜 녹음 내용을 토대로 똑같은 테이프 두 개(복사원본)를 만들었다. 하나가 1차로 검찰에 제출한 것이다. 호주에 있는 동생이 갖고 있던 나머지 하나를 여러개 복사해 방송사들에 주고 검찰에도 제출했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는 또 "검찰 조사 과정에서 복사원본이 아닌 재복사본을 제출했다고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측근은 "복사원본은 정치인 병역 비리 자료와 함께 김대업씨가 만약을 위해 보관 중"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검찰은 이같은 金씨의 주장에 대해 "딴 소리를 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김기찬·김원배 기자

wolsu@joongang.co.kr

김대업씨 테이프 일지

▶2002년 8월 5일

-金씨 첫 검찰 출두, "수사 상황 지켜본 뒤 제출하겠다."

▶8월 12일

-金씨 녹취 테이프 1차 제출, 녹취록 곳곳 가린 채 언론에 공개.

▶8월 23일

-대검 "테이프 내용 판단 불능, 편집된 것으로 보기는 어려워."

▶8월 30일

-金씨 녹취 테이프 2차 제출.

-金씨측 변호인 "보이스펜서 처음 옮긴 것이라 음질 좋다."

▶9월 19일

-일부 언론 "10여곳에 소리 불연속점 있어 편집 흔적" 보도.

-대검 "불연속점 3∼4곳 있지만 조작되지는 않은 듯."

▶9월 30일

-검찰 "2차 제출 테이프 제조 연도 2001년"이라며 조작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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