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낮은 지형에 배치된 가옥들 다른 방향 바라봐 역동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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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호 04면

양동마을에 들어서는 느낌은 하회마을이나 외암마을처럼 비교적 평지에 위치한 마을의 밋밋함이나 편안함이 아니다. 양동마을은 지세가 급하고 지형의 변화가 풍부하다. 단조로운 아파트 마을에서 느낄 수 없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있다.

건축학자가 본 양동마을

양동마을의 얼개는 지형과 길로 이루어진다. 능선을 따라 난 이 산길은 마을을 이루는 물봉·갈곡·안골 등의 골짜기들을 은밀하게 이어준다. 이 길에서는 서북쪽의 설창산과 함께 무첨당이 시원히 눈에 들어온다. 이 길을 따라 조금 북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경산서당이다. 공부를 하는 정신적인 공간이 마을의 후면에 있는 것이다. 이 낮고 높은 길들을 거닐며 우리는 올려볼 때 다르고 내려다볼 때 다른 한옥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다.

전통한옥은 빼어난 모양의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자리 잡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산봉우리를 안대(案帶)라고 한다. 무첨당에서 볼 수 있듯이, 같은 주거 내에서도 안대는 채마다 다른 경우가 많다. 양동의 한옥들이 갖는 큰 특징은 방위가 각기 다른 채들이 모여 자아내는 역동성에 있다. 수직방향으로는 지형의 높낮이로 인해, 그리고 수평방향으로는 안대의 차이로 인해 양동의 한옥들은 삼차원적인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관가정의 사랑채 등 손씨의 건물들은 대개 종가인 서백당의 사당이 취한 무릉산을 안대로 삼고 있다. 이에 비해 이씨 건물들은 여러 곳을 안대로 삼고 있으나, 대종가인 무첨당의 사당이 취한 형산강 너머의 낙산이 가장 중요한 안대다. 양동의 두 문중은 상대 가문의 안대를 의식적으로 피했다. 거꾸로 같은 가문에서는 안대를 공유함으로써 시각구조에서도 공동성을 가지려 했다.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심리적 연대를 의미한다.

양동은 국보 1점, 보물 4점, 중요민속자료 12점, 유형문화재 2점 등 모두 24점의 문화재를 자랑한다. 관가정·무첨당·향단 등 세 집은 살림집으로서는 드물게도 보물이다. 손씨와 이씨, 이 두 문중이 경쟁적으로 훌륭한 건축물을 세워온 결과, 양동은 살아있는 한국 건축의 전시장처럼 되었다.

마을 전면에 나란히 지어진 관가정과 향단은 ‘한옥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낸다. 관가정은 서백당에서 분가한 집이고, 향단은 무첨당에서 분가한 여강 이씨의 파종가다. 기둥의 격자체계를 일정하게 반복하여 구성된 관가정은 살림집 역할을 하기 어려우리만치 질서정연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향단은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관가정과 달리 과장된 박공을 설치하고 모든 기둥을 원기둥으로 했으며, 그밖에도 여러 장식적인 부재들을 사용한 향단에서는 과시의 의도마저 감지된다. 향단은 관가정과 같은 ㅁ자형 한옥을 극적으로 변형한 모습이라고 할 만하다.

시원한 논리성의 관가정과 쥐어짜듯 수놓듯 한 향단, 기둥을 낮추고 지붕의 경사까지도 완만하게 하여 몸을 낮춘 관가정과 뽐내듯 자신을 드러내는 향단, 그 조형의 차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향단은 관가정을 누르려고 돌출적인 조형성과 큰 규모를 택한 것일까?

이웃한 관가정과 향단이 대조적인 외형을 갖게 된 연유는 지형과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형을 유심히 살펴보면 관가정은 볼록한 지형에, 향단은 오목한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드러난 지형에는 단순하고 차분한 건물을, 숨은 지형에는 높고 화려한 건물을 지었으니, 바로 지형과 대응하는 건축철학의 실현이다. 이렇게 양동마을의 한옥들은 적합한 자연지형을 선택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아가 그것으로부터 디자인을 풀어나감으로써 환경친화 건축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자연의 리듬을 들려주는 지형을 평지로 만들고 인공 재료로 둘러싸인 경직된 기하학적 공간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양동마을은 참살이에 대한 지혜와 교훈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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