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재앙' 언론 탓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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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얼마 전 서울 하이퍼텍 나다에서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만든 장선우 감독과 관객들이 만났다. '성냥팔이…'가 한국 영화 사상 최고 액수의 제작비(1백10억원)를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관객 동원에 참패하자 급히 마련된 자리였다.

인터넷 응모를 통해 뽑은 관객 80여명을 찬·반으로 나눠 논란이 되고 있는 작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보자는 취지였다. "언론과 평단의 지적처럼 과연 이 영화가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쏟아부은 '재앙'에 지나지 않는지 관객들의 가감없는 의견을 듣고 싶었다"는 홍보 담당자의 말을 듣고 취재차 달려갈 참이었다.

그런데 행사가 열리기 약 두 시간 전 이 영화의 투자사 관계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방금 행사를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는 통보였다. 따라서 기자들은 행사장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이미 한 주 전부터 팩스와 e-메일 등을 통해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터라 어이가 없어 이유를 물었다. 그는 "영화에 대한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가 잇따르면서 '성냥팔이…'의 투자자들이 반발하는 것은 물론 다른 작품에 대한 신규 투자마저 중단될 지경에 처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가 더 이상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걸 피하고 싶다는 것이다. 대신 현장에서 오고간 토론 내용을 담은 녹취록을 나중에 주겠다고 했다.

공모를 통해 관객들을 뽑았으니만큼 이 행사는 이미 공개된 자리다. 투자사의 이해에 따라 공개된 행사의 취재를 막겠다는 발상에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과연 매를 피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맞을 매가 있다면 의당 맞아야 하지 않을까. 억울한 매질이었다면 토론 과정에서 떳떳하게 가려질 수도 있다.

그래야 다시 '재앙'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1백10억원이라는 엄청난 수업료를 지불하고도 배우는 것이 없다면 아니 배우기를 스스로 거부하거나 회피한다면 그 얼마나 어리석은 태도인가.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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