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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장규 칼럼

대통령은 '변화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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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노무현 대통령이 변했는가 여부가 새삼 화제다. 본인은 변했다는 이야기가 싫은 모양이다. 최근에는 '나는 변한 게 없다. 하지만 변했든 안 변했든 일이 잘 풀려나갔으면 좋겠다'며 한발짝 비켜섰다. 이런 모습 자체가 변화다. 그전 같았으면 버럭 화부터 내고 나섰을 게다.

변화에는 여러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정말 생각이 바뀌어서 바뀐 것도 있을 것이요, 상황이나 전략이 달라진 탓도 있을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노무현 특유의 '장의 논리'에 사람들이 홀린 나머지 바뀌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 '경제 올인'다짐해도 일부선 의심

대통령의 변화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역시 경제 때문이다. 아무리 그가 '경제 올인'을 다짐해도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이다. 이런저런 추측.분석만 할 게 아니라 한 분야를 잡아 사실 검증을 해보자.

노 대통령의 변화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그의 주종목이랄 수 있는 노동정책 쪽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지 얼마 안돼 당선자 신분으로 조흥은행 노조위원장을 비밀리에 만났다. 신한은행에 팔려가는 것을 반대하는 노조에 "매각 여부를 결정하는 실사를 노조가 동의하는 제3의 기관에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래놓고 "노사갈등 중재를 실천하고 있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이 행차는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최초, 최대의 실수였고, 이 때문에 두고두고 엄청난 대가를 물게 된다. 노 당선자 자신도 그처럼 파장이 클 줄은 몰랐을 거다. 새 정권이 정식 출범하기도 전에 재계는 큰 충격을 받았고, 노동계는 세상이 달라졌다며 기세를 올렸었다.

제2탄으로 '세력균형론'이라는 신 용어를 선보였다. 기업은 힘이 세고, 노조는 약하니 노조가 법을 조금 어기는 것은 좀 봐줘야 한다는 논리다.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하니 관계장관은 더 펄펄 뛰었다. 당시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한술 더떠 '노동자를 위해 기업과 싸우는 게 노동부 장관의 소임'이라고까지 했다. 언론을 공격할 때도 노조세력을 앞장세웠다.

이 바람에 김대중정권 말기부터 힘을 얻기 시작했던 '법과 원칙에 따라'는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싹 자취를 감추었다. '대화와 타협'이 법과 원칙을 대체했다. 대화와 타협 역시 법이나 원칙의 시각에서 보면 앞의 세력균형론처럼 노조 쪽에 대한 배려가 듬뿍 담긴 정치슬로건이었으며, 한편으론 참여정부의 지지그룹 의견을 수렴한 결과였다. 또한 노동변호사로 명성을 날렸던 노무현 대통령 자신의 철학이요, 신념이기도 했다.

그러나 집권 얼마 안 가서 "노동문제를 인권보호 차원에서만 봐선 안 된다"는 말을 시작으로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방미에서 돌아오더니 "2년 안에 노사갈등을 바로잡겠다"고 다짐했고, 일부 측근은 1년 단축을 주장하는 일도 벌어졌다. 어쨌든 화물연대 운송거부를 비롯해 고속철 터널 시위 등을 겪으면서 '대화와 타협'은 차츰 '법과 원칙'으로 대체돼 갔다. 주변 참모진에도 변화가 왔다. 청와대 노사개혁팀장을 경질하더니 노동부 장관도 바꿨다. 기업을 두둔하고 오히려 노조의 각성을 촉구하는 발언도 더러 나왔다. '대기업 노조들이 집단 이기주의에 취해 있다'며 동반자 관계였던 민주노총한테까지 간접공격하기에 이르렀다. 귀족노조라는 말도 썼다. 총선에서 민노당이 대거 국회에 진출하면서 한동안 주춤했으나 큰 흐름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갈수록 고용문제가 심각해지고 투자독려가 절실해짐에 따라 노조를 서운케 하는 정책들이 더욱 불가피해져 왔기 때문이다. LG정유 파업사태라든지, 공무원노조 문제 등에 정부 태도 변화가 바로 그런 증거들이다. 정권 초기의 분위기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 정권 초기라면 어림없는 일

급기야 대통령 입에서 해고 불가피론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해고가 쉬워져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대통령당선자 신분으로 부실 은행의 노조책임자를 몰래 만나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는 정리해고 지지 발언으로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그가 말했던 2년이 지났다. 과연 충분히 변했는지는 별도로 따질 일이지만 '대통령은 변화 중'의 현재진행형임엔 틀림없다. 3년째인 올해를 지켜보자.

이장규 경제전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