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책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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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높아 봤자 열 자쯤 되는 다리에 올라 그곳 벽에 옆으로 글씨를 쓰는 사람의 이야기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려 있습니다. 줄이 바른지 삐뚠지를 쓰는 사람은 알지 못하고 땅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 봐야 안다는 체험담이었습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전우익, 현암사)

저 같으면 제목 표기를 『혼자만 잘 살믄 무신 재밍껴』라고 했을 것입니다. <재밍껴>는 <재밉니까>의 경상도 북부 방언입니다. 이 책에는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사는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만 전우익 선생은 농사꾼이 아닙니다. 그는 철인(哲人)입니다. 농삿일은 그가 세상 이치를 설명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는 이어서 나온 책입니다. 지난 대보름, 이 분이 상경하신다기에 달려가서 절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깜짝 놀라면서 하시는 말씀. "하이고, 와 잇니껴?" 아니, 왜 이러십니까, 라는 뜻입니다.

이윤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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