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 좋지만 黨 보고 찍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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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선 레이스에 정몽준(鄭夢準)의원이 가세했다. 정치권은 영남 민심의 변화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부산 출생에 울산 동구가 지역구인 鄭의원을 이곳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대선 승부를 좌우할 중요 변수다. 특히 관심은 울산이다. 鄭의원의 정치적 근거지인 동시에 한나라당의 지지 기반이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는 곳이다.부산·경남(PK)정서를 깔고 있지만, 대형 사업장이 많고 비영남 출신이 30%를 넘는다.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등 현대그룹의 주력기업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추석연휴 마지막날인 22일 오후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 위치한 명덕패밀리 아파트 공터. 고향에서 명절을 쇠고 돌아온 현대중공업 근로자 5∼6명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대통령선거 얘기를 꺼내봤다. 崔모(49)씨는 "정치하는 사람들 쌈박질만 해대니 다 꼴보기 싫은기라. 정몽준씨 나오면 찍어줄랍니더"라고 말했다. 듣고 있던 李모(52)씨도 "돈은 많으니 도둑질은 안해묵을거 아이가"라며 맞장구쳤다.

1992년 대선 때 현대차에서 일했다는 택시기사 황용규(55)씨도 "그때 정주영씨 선거운동은 했어도 찍기는 YS(김영삼 전 대통령)를 찍었심더. 근데 이번엔 정몽준씨 찍을라캅니더"라고 했다. 鄭의원이 참신해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鄭의원은 동구(현대중공업)·북구(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상당한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鄭의원 지지자조차 "다음을 노리고 나온 거라 안봐야겠나"라며 당선 가능성은 확신하지 못한다.

鄭의원 지지자들은 그가 민주당과 손잡을 가능성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북구 양정동에서 치킨센터를 하는 배을호(38)씨는 "민주당에서 오이라 칸다고 덥썩 가뿌면 노무현씨 맹크로(처럼) 영 베려삔데이"라고 주장했다.

반DJ정서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택시기사 손종대(43)씨는 "YS가 아들 하나 가지고 왕창 망했으면 DJ는 세 아들이니까 세배로 망해야 하는 거 아이가"라고 했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 얘기는 좀체 듣기 어려웠다. 중구 옥교동 중앙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는 최동선(51)씨는 "고향 김해에서 시의원 하나 당선 못 시킨 사람이 대통령은 우째 되겠심니꺼"라며 고개를 저었다.

관공서·주택가가 밀집한 중구·남구로 나오니 분위기가 다르다. 남구 삼산동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식당주인 정기화(42·여)씨는 "고향 발전 때문에 정몽준씨한테 마음이 쏠리는 사람이 있어도 나중 되면 한나라당으로 많이 갈낍니다"라고 했다.

23일 오전 고속버스터미널 부근에서 만난 자영업자 이정규(64)씨는 "텔레비에서 만날 이회창씨 아들 군대 문제를 떠드는데 5년 전에 우려먹었던 거 아잉교. 짜증나서 못보겠다카이"라며 열을 냈다.

李씨는 "이회창씨가 딱히 좋고 싫고가 있어서가 아이고 워낙 김대중씨가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논기라. 찍을 데가 한나라당 말고 또 오데 있노"라고 했다. 지역언론사의 K부장은 "한나라당이 지역 오피니언 리더층과 가깝고 조직세가 탄탄해 '정풍(鄭風·정몽준 바람)'이 불어도 이회창 대세론을 넘기는 역부족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울산을 벗어나면 이회창 대세론은 더욱 피부에 와닿았다.

부산의 모대학 교직원인 김동철(36)씨는 "추석 때 식구들과 대선 얘기를 해봤더니 설령 병역비리 의혹이 사실이더라도 다들 이회창씨 찍겠다고들 하더라"고 전했다. 鄭의원에 대해선 "지난번 이인제씨 경험 때문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다.

울산=김정하 기자

worm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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