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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눈 덜렁이 깨물어 주고 싶죠 ? ^^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 발랄(潑剌)

지난 17일 오후 MBC 의정부 제작센터. 그녀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촬영장을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쉴새 없이 입을 움직였다. 그녀의 주변에 사람들이 몰렸다.

오후 5시 넘어 모두가 지쳤을 때 그녀의 진가가 다시 한번 발휘됐다.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해 별명이 '낙타'인 그녀가 과장된 입놀림으로 오물오물 음식을 먹기 시작한 것. 이를 지켜보던 스태프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진다. 이곳에선 이미 명물이 된, '낙타가 여물씹는 표정'이다. 이 연기(?)는 스태프들의 열렬한 호응 덕에 실제 드라마 장면에 삽입됐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작진과 연기자·스태프들이 가족처럼 호흡이 잘 맞아요."

특히 상대역인 감우성에 대해 '찰떡 궁합'이라며 자랑을 멈추지 않는다.

"우성 오빠가 SBS '메디컬 센터' 할 때 저를 많이 예뻐했거든요. 명색이 멜로인데, 파트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되잖아요?"

한참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스탠 바이" 안판석 PD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김민선은 순식간에 드라마 속 '현정'으로 돌아간다. 장면은 재벌3세 감우성이 현정의 사무실에서 옷을 갈아 입다 팀장(허준호)에게 들키는 순간.

"야, 너 누구야."(허준호)

"김처처철수순데요."(감우성)

"선생님, 제 손님이에요… 하하하…."

김민선이 팬티 바람의 감우성을 보고 킥킥 웃다 결국은 폭소를 터뜨리고 만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안PD가 "좋았어, 바로 그거야"라고 만족스럽게 외친다.

현재 드라마 촬영은 16부중 3부 정도 진행된 상태. 발랄한 성격을 부각하기 위해 격한 장면들도 다수 포함됐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 다리를 전속력으로 질주하는가 하면, 한강 둔치에서 축구를 하기도 한다. 때문에 그녀의 몸 곳곳엔 훈장이 남았다. 야구 배트를 휘두르다가 왼손 엄지손가락 아래쪽이 심하게 짓물렀고, 축구 도중 동료 출연자 정성화에게 오른발을 채어 시퍼런 멍이 들었다. 그래도 마냥 신나는 모양이다.

"주인공 이름이 제목에 들어간 드라마가 흔치 않잖아요. 잘 하고 싶어요. 그래서 모든 일정을 다 제치고 이 드라마 하나에만 매달리고 있어요. 촬영 일정 때문에 잠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피곤한 줄 모르겠어요."

다시 그녀의 수다가 시작됐다.

# 변신(變身)

'유리구두'에서 김민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을 향해 돌진하는 승희역을 맡았다. 자연 시청자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다. 이런 그녀에게 '현정아 사랑해'는 변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다행히, 덜렁거리고 실수 투성이지만 쾌활한 성격의 '현정'이 실제 그녀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한다.

또 김민선은 극의 중심축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연애 경험을 순간 순간 되살리고 있다고 한다.

"연애, 해봤죠. 지금은 끝났지만…. 장면마다 미세한 감정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현정이었어도 비슷한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그녀는 이렇게 극중의 '현정'과 자신을 동일시해 가고 있었다.

# 도전(挑戰)

이 발랄한 처녀는 "나는 왜 잘난 게 없을까"라는, 어렸을 적부터의 자격지심을 연기로 극복했다고 한다. 그만큼 연기에 대한 갈증은 끝이 없다. 1999년 KBS 드라마 '학교'로 데뷔한 이래 영화 '여고괴담''아프리카' 등으로 승승장구한 그녀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재능이 많다. 자타가 공인하는 노래 실력에, 가수 박진영의 뮤직 비디오에 댄서로 출연했을 정도로 춤도 빼어나다. 이런 재능을 바탕으로 연기 외에 자신의 영역을 차근차근 넓혀 가겠다고 한다.

"아직 부족해요. 공부도 더 해야 하고. 하지만 분명한 건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는 거예요."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난다. 그때 다시 감독의 "액션!" 사인이 들려 왔다. 뛰는 동시에 외친다.

"네, 갑니다."

이상복 기자

jizhe@joongang.co.kr

방송가 속설에 '악녀(惡女) 후유증'이란 게 있다. 악녀 역을 맡으면 시청자의 뇌리에

강하게 남을 수 있는 반면, 그 이미지의 덫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최근 종영한 SBS '유리구두'에서 독기를 철철 내뿜던 탤런트 김민선(23)이

지금 이 시험대에 놓여 있다. 그녀는 MBC가 오는 30일부터 방송하는

월·화 드라마 '현정아 사랑해'에서 주연을 맡았다. 이번엔 나쁜 여자가 아닌,

구김살없이 활발한 다큐멘터리 조감독 역이다. 그녀로선 단독으로 주연을

맡은 첫 드라마. 의욕에 찬 변신과 도전에 나선 그녀를 찾아 의정부 촬영 현장으로 갔다.

재벌 후계자와 평범한 여인의 사랑 이야기. '현정아 사랑해'는 어찌 보면 매우 익숙한 구도다. 그러나 '장미와 콩나물''아줌마' 등 히트 드라마를 연출해 온 안판석 PD는 "기존 드라마와 전혀 다른 내용이 될 것"으로 자신한다.

"누구나 마술사의 손에서 비둘기가 나올 것을 알고 있지만, 항상 새로운 재미를 느끼죠. 캐릭터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캐릭터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면 1백80도 다른 드라마가 탄생합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여자가 남자의 부와 명성에 편승해 신분상승을 하는 신데렐라식 구도가 아니다. 오히려 남보다 1백m 앞에서 인생을 시작한 재벌3세가 적극적인 사고를 지닌 여성에게 감화돼, 출발점으로 돌아와 자신의 인생을 다시 개척한다는 이야기다. 김민선이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는 신참내기 PD 현정으로, 감우성이 회사 대신 사랑을 택하는 재벌3세 범수로 나온다. 안PD는 "갖가지 역경을 딛고 용감하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 나가며 사랑을 지키는 한 청춘 남녀의 모습을 그리겠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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