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음식쓰레기 기준 모호" 불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최근 환경부 홈페이지와 지방자치단체 민원실에는 환경부의 새 음식물 쓰레기 분류기준에 불만을 품은 네티즌과 시민들의 비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올 들어 환경부가 음식물 쓰레기의 매립장 직접매립을 금지하면서 모호한 음식물 쓰레기 분류기준과 처벌규정을 내놓은 게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시민들의 불만이 팽배해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게 되면 자칫 쓰레기 대란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과태료를 물지 않으려고 먹다 남은 살코기를 일일이 발라낸 뒤에 생선뼈를 버려야 하느냐. 차라리 장사를 그만두겠다."(여의도 음식점 J씨)

"납부필증이 없는 통의 쓰레기는 수거해 가지 않는다고 해놓고 필증을 팔지 않으면 어쩌란 말이냐."(광주시 북구 S씨)

이처럼 시민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환경부는 지난 7일 각 지방자치단체에 분리수거 불이행에 대한 과태료 부과(5만~20만원)를 신중히 할 것을 당부하며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환경부의 이 같은 지시가 단속 완화 움직임으로 비치면서 자칫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와 재활용 시스템 자체가 흐트러질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 실태=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분류하는 기준이 시.도별로 들쭉날쭉한 데서 비롯된 혼란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9일 환경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한 주부는 "계란 껍데기, 귤 껍질, 생선 가시, 게 껍데기, 사골 뼈 등을 어디에 버려야 하느냐. 이왕에 실시하기로 한 이상 확실히 알고 실천했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반 시민들뿐이 아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청소 용역원은 "그대로 매립지로 가져갔다가는 반송될 수가 있어 직접 음식물 쓰레기를 골라내기도 한다"고 호소했다.

환경부는 이 같은 비난 여론에 밀려 지난 7일 "종량제 봉투에 음식물 쓰레기가 담겨 있다 하더라도 상당량을 의도적으로 배출하는 경우에만 과태료를 부과하라"고 각 지자체에 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시민들의 비난이 가장 거센 생선뼈나 육류 뼈다귀의 경우 발라내 종량제 봉투에 담아 배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음식물 쓰레기와 같이 배출해도 문제가 되지 않게 됐다.

그러나 얼마만큼을 '상당량'으로, 또 '의도적'이라고 판단해 과태료를 부과할 것이냐를 놓고 새로운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자체가 모호한 기준으로 인한 시비를 피하기 위해 과태료 부과를 회피하고 시민들도 분리수거에 소홀해진다면 95%까지 높아진 분리수거율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공들여 구축한 재활용 정책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어쩌다 이렇게 됐나=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 정책이 재활용에 대한 필요성보다 주민 민원 해소 차원에서 추진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국내에서는 8년 전인 1997년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가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에 명시됐고 수도권매립지에서 2000년부터 분리수거를 시작했다. '음식물 쓰레기 국물을 흘리고 다니는 청소차'와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악취.벌레' 등의 문제를 호소하는 수도권매립지 주변 주민들의 민원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료화.퇴비화 등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에 대한 기본 정책방향이 서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지자체는 사료화 시설을, 어떤 곳은 퇴비화 시설을 설치하는 등 갈팡질팡했다.

처리할 수 있는 음식물 쓰레기의 종류가 달라지면서 분류 기준도 들쭉날쭉해진 것이다.

미국.독일 등 외국의 경우는 음식물 쓰레기를 별도로 분리수거하지 않는다. 음식물 쓰레기를 나뭇잎이나 잔디 등과 구분없이 '바이오 쓰레기'로서 함께 퇴비화한다. 생선뼈.고기뼈.과일 껍질.달걀 껍데기 등을 가려내는 문제로 골치를 썩일 필요가 없는 셈이다.

홍보 부족도 음식물 쓰레기 분리를 둘러싼 정책혼선에 큰 몫을 했다. 관련 법규가 만들어진 지 8년이 지났는데도 분류기준을 시민들에게 홍보한 적이 거의 없었다. 시민들 사이에 "정부는 그동안 뭘 했느냐"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강찬수 기자

*** 대책은…

서울시립대 이동훈 교수는 "이제 와서 (분리수거를) 뒤집기에는 너무 많이 왔다"며 "복잡한 분리수거 규정을 단순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 김미화 사무처장도 "시설에 시민을 갖다 맞출 것이 아니라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시설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가 필요 없는 시설을 적극 활용할 필요도 있다.

경남 남해군의 '생물학적 쓰레기 처리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시설은 쓰레기를 태우지 않고 발효 시켜 일종의 퇴비인 부숙토를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최근 이 시설은 환경부의 기술 인증까지 받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