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 대재앙] 자연재해 신드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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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주부 박모(45)씨는 9일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40만원을 주고 '가정용 생존키트'를 구입했다. 생존키트 안에는 팔뚝만한 휴대용 정수기, 진공 포장돼 30년 동안 상하지 않는 비스킷 등 비상 먹거리, 물에 젖지 않는 성냥, 수동으로 전기를 발생시키는 자가 발전기 등 30여종의 구급용품이 들어 있었다. 박씨는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가족들의 안전이 걱정돼 세 세트를 샀다"고 말했다.

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해일(쓰나미)의 공포가 확산하면서 국내에서도 자연재해에 대비한 비상 구호용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재난 대비 용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인 N사에 따르면 줄을 당기면 공기가 들어가 소형 보트로 바뀌는 가방, 산소 호흡기, 비상용 침낭 등 재난 대비 용품의 매출이 쓰나미 참사 이전에 비해 10배 가까이 치솟고 있다. 이 회사 임경헌 이사는 "참사 이전에는 하루에 레저용 비상용품 5~6개밖에 팔지 못했지만 요즘은 상품 주문이 폭주해 배송일이 1주일째 밀려 있다"고 귀띔했다.

실전 같은 재난훈련을 통해 만일의 사태를 준비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서강대에 재학 중인 이수식(25.신문방송4)씨는 최근 N포털 사이트에 있는 생존 훈련 카페에 가입했다. 100여명에 불과하던 이 카페의 회원 수는 쓰나미 참사 이후 두 배 정도 늘었다.

이 카페는 마른 지푸라기와 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내는 방법, 비닐에 물과 쌀을 넣고 땅에 묻은 뒤 그 위에 불을 피워 밥을 해먹는 방법 등 재난시 대처요령을 가르쳐 주고 있다. 또 두 달에 한 번씩 외딴 섬에 들어가 최소한의 소지품을 갖고 오지에서 살아남는 훈련을 한다. 재난 영화의 비디오 대여순위도 덩달아 상승세다. 비디오 대여 체인 '영화마을'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일 참상을 다룬 영화 '투모로우'는 출시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쓰나미에 대한 관심과 함께 대여 순위가 급상승하고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이는 언론을 통해 참담한 피해 현장을 목격한 뒤 불안심리가 커지면서 나타나는 단기적인 현상"이라며 "우리나라는 자연재해에 비교적 잘 대비하고 있는 만큼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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