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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코리아 극기훈련 동행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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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 야간 행진을 마친 BR코리아 직원들이 강릉 정동진으로 옮겨 해돋이를 본 뒤 각자의 소망을 적은 풍선을 띄워 올리고 있다.

어둠에 휩싸인 오대산 자락. 지난 8일 오전 4시30분 200여명의 행진 대열은 목표지점을 앞두고 흐트러졌다. 비포장 도로를 걸은 지 4시간이 넘어서자 이탈하는 '대원'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한 여성은"다리가 말을 안 들어. 내가 왜 자꾸 옆으로 가는 걸까"라며 반쯤 얼어 붙은 생수를 외투 주머니에서 꺼내 들이켰다. 인솔자가 "이제 한 시간 남짓만 더 가면 목적지"라며 '파이팅'을 외쳤지만 따라 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일부는 결국 비탈을 오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비상 대기 차량이 그들을 실었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의 59번 국도에는 탈진한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영하 12도의 맹추위가 몰아 쳤다. 거센바람은 행군을 더디게 만들었다. 오대산 중턱 6번 국도변 휴게소에서 0시에 출발한 이들은 최종 목표지점인 현북면 어성전리까지 21㎞를 걷고 또 걸었다.

군사 훈련이 아니다. 배스킨라빈스와 던킨도너츠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BR코리아의 새해맞이 극기 훈련이다. 이 훈련에는 임원들부터 말단 사원까지 212명이 참가했다. 출발할 때는 하늘을 보고"이렇게 별이 많은 줄 몰랐다"며 산책하듯 걸었다. 그러나 이내 가파른 오르막을 만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30분을 가도 정상이 보이지 않자 누군가"도대체 끝이 어디야"라고 불평했다. 힘겹게 오르다보니 추위에도 대부분 땀을 흘렸다. 외투 앞섶을 풀어헤쳤고 장갑도 벗었다. 1시간 10분을 가서야 내리막을 만났다. 걷기는 쉬웠지만 이번엔 추위가 몰아쳤다. 연신 뺨을 문지르지만 냉기는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오전 2시.신왕초교 부연분교에서 따뜻한 어묵국으로 추위를 녹였다. 꿈같은 15분 휴식을 뒤로 하고 행진은 이어졌다. "추위에 코털이 뻣뻣해지는 것 같지 않냐."(아이스크림영업팀 최용석 대리.31) "코털 죄 깎았어."(같은 팀 신희정 대리.32). 다시 한 시간 뒤. 행렬이 조용해졌다. 힘이 들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리가 옆으로 간다"고 했던 오윤지(21.여) 사원은 나중에 "지친데다 졸음까지 쏟아져 동료가 없었더라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진기태(35) 총무과장은"2001년 극기훈련을 시작한 후 사내 커플이 꽤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본사 160여명 중에 7쌍이 사내 결혼 커플이다.

오전 5시40분에 목적지에 다다랐다.마케팅팀 김종민(30) 주임은 "출발한 지 한 시간 반 만에 양 발바닥 가운데에 물집이 잡혔다"면서 "뒤꿈치를 들다시피해 걸었다"고 말했다. 윤영태 총무부장이 "극기 훈련으로 다져진 정신력과 조직력은 지난해 매출(1750억원)을 전년보다 14%나 늘렸다"고 설명했다. 일행은 "올해는 매출 2000억원을 달성하자"고 힘차게 외친 뒤 정동진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양양=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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