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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들 의료혜택 '사각지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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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해 11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조모씨는 올 1월 3일 가슴에 통증을 느껴 구치소 의무과를 찾았다. 의무과 직원은 소화불량이라며 의사 진찰없이 소화제·설사약을 처방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씨의 통증은 가시지 않았고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누워 있어야만 했다.

동료 재소자들까지 나서 도움을 호소했지만 의사는 사흘이 지난 6일이 돼서야 조씨를 진찰했다. 한명뿐인 의사가 철야근무를 하고 대휴한데다 토요일(5일)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결국 조씨는 밤새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다 7일 오전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가 숨졌다. 부검 결과 조씨의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인권운동사랑방에 접수된 사례다.

지난 3월 교도소 복역 중 자궁암으로 숨진 김모씨. 그는 교도소에서 진통제 처방만 받다 숨졌다고 동료 재소자들이 주장했다.

교도소·구치소 등 구금시설에 수용된 재소자들이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구치소나 교도소 직원들의 잘못이기보다는 부족한 의료인력·예산 등 구조적 이유에서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7월 현재 전국 44개 구금시설(유치장·군 교도소 제외)의 의료인력은 모두 1백30명. 이 중 의사는 53명뿐이다. 의사 한명이 진료해야 하는 재소자는 1천1백83명에 이른다.

다행히 구금시설 담당 의사가 병의 심각성을 제때 파악, 외부 병원으로 후송을 허락해도 모든 재소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해 재소자들은 국외 거주자와 같은 '급여 정지자'로 분류돼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정부는 재소자들이 외부 병원을 이용할 때 의료비의 절반 정도만 지원하고 있어 형편이 어려운 재소자들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다. 최근 3년간 외부 의료시설을 이용한 재소자 2만1천4백여명의 치료비 56억4천여만원 중 국가부담금은 28억6천여만원이었다.

지난 7월 "거식증·우울증으로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인권위 권고에 따라 다음달 초까지 한시적으로 풀려난 육모씨는 돌봐줄 가족이 없는 데다 간병인을 구할 형편도 못 돼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개인병원의 폐쇄병동에 갇혀 지내는 처지다.

구금시설연구모임 이상희 변호사는 "재소자들 사이에선 '여기 있는 동안 아프지 말자'고 말할 정도"라며 "아무리 범법자라도 인권이 있는 만큼 적절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궁욱·윤혜신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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