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日정상회담]日人납치·식민배상 문제'빅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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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7일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의 역사적인 평양회담은 양측 모두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회담이 실패할 경우 국제적인 고립이 가속화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북한은 상투적인 정치선전으로 회담을 고의적으로 결렬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이 '악의 축'의 하나인 이라크에 최후 통첩을 보낸 이상 북한으로선 미국에 신속하고 선명한 유화 제스처를 보일 필요가 있다.

일본은 북한을 '보통국가'로 국제외교 무대로 이끌어 내도록 국교정상화 교섭에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최대 현안인 일본인 납치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측은 이미 사전 실무회담을 통해 정상회담의 세가지 의제를 조율했다. 각 의제가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북·일 수교교섭의 장래가 결정될 전망이다.

◇일본인 납치문제=일본 측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현안이다. 고이즈미 총리로서는 방북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인 납치 의혹 문제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둬야만 한다.

현재 일본이 북한에 납치됐다면서 소재확인 등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일본인은 아리모토 게이코(有本惠子) 등 여덟 건의 사건에 걸쳐 모두 11명에 달한다.

일본 측은 이 문제와 관련해 ▶납치 피해자의 안부 관련 정보 제공▶가족과의 면회▶당사자의 일본 귀국 등 3단계 요구사항을 내걸고 있다. 또 전면적인 해결의 시한도 국교정상화가 이뤄질 때까지로 못박고 있다.

반면 북한은 납치 문제는 일본의 날조라는 입장이며 일본인 행방불명자의 소재를 파악하는 인도적인 차원의 문제로 풀자는 태도를 고수해왔다. 현재로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피해자 안부 정보를 제공하는 선에서 일단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일본언론들은 전했다.

◇과거청산=북한이 국교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는 사안이다. 북한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명시적인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고, 일본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때의 경제협력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일본으로선 한국과의 '균형'을 중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북한 측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사전 실무협의에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95년 '무라야마(村山)선언' 수준에서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하고 북한은 기존 주장을 접고 경협방식에 응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상금액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얘기가 오가지 않고 있으며, 상당한 시간을 끌며 줄다리기가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동북아 안전보장=북한이 2003년까지 미사일 발사실험을 동결하겠다고 밝힌데 대해 이를 무기한으로 연장시키는 약속을 얻어내 미사일 개발을 사실상 중단토록 하겠다는 것이 일본 측 목표다. 또 일본을 겨냥한 미사일 배치 및 수출중지도 요구하며 94년의 북·미합의 준수 등 핵사찰 수용도 촉구할 계획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지난 13일 고이즈미 총리와의 회담에서 "북한에 이 문제를 꼭 지적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북한으로선 핵·미사일 개발 문제가 중요한 '대미 카드'인 만큼 북·일회담에서 결론을 내릴지는 의문이다. 국교정상화 교섭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전향적인 발언'을 하는 선에 그칠 공산이 크다.

평양=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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