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分黨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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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에 분당(分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신당 창당을 둘러싼 친노(親盧)파와 반노파 간 갈등과 반목이 수습 불가능한 상태로 치닫고 있다. 어제 신당추진위의 김영배 위원장이 통합신당의 실패 책임을 후보직을 고수하는 노무현 후보한테로 돌렸고, 곧바로 盧후보는 "국민 재경선은 시간상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대선이 1백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친(親)대통령 정당'이 후보 문제도 정리하지 못하는 이런 모습은 전례가 없다. 우리 정치문화의 치명적 병폐인 정국 전개의 예측 불가능성을 상징할 뿐이다.

이 같은 표류가 국민을 피곤하게 한다. 8·8 재·보선 참패의 반성에서 출발했던 신당 논란이 질릴 정도로 오래가는 탓이다. 백지신당·통합신당·개혁신당·가교신당, 개문발차론·구당(救黨)적 탈당론 등 친노·반노·중도파는 저마다 그럴싸한 명분과 상황론을 내세웠다. 결국 양측 모두 결별의 수순을 밟고 있으니 한심한 것이다. 정치 철새와 이합집산, 그리고 험악한 삿대질과 어색한 제휴 등 과거에 너무나 익숙했던 장면이 재현될 만한 상황이다.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기본적으로 '盧후보로는 이기기 어렵다'는 불가론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엔 원칙보다 실리주의가, 정치개혁보다는 당장의 승리 지상주의만이 드러난다. 이런 분위기는 국민경선, 집단지도체제, 당권·대권 분리론 등 성공작이라고 자평했던 새로운 정치실험에 스스로 먹칠을 해버렸다.

민주당의 깊은 혼선은 지도부의 역량 부족 탓도 있다. 盧후보는 후보와 당권의 분리 틀에 얽매여 새로운 정치환경에 어울리는 갈등 수습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반미주의면 어떠냐' '서울대 폐교론' 등 습관성 같은 盧후보의 구설도 반노파와의 간격을 넓혔다. 한화갑 대표 등 최고위원들은 'DJ 이후'의 당권 확보 문제에만 골몰한 채 수습의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제 친노·반노·중도파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선택은 자유지만 그 책임을 국민은 준열하게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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