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책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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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칼을 다오.

군관이 칼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칼을 뺐다. 푸른 날 위에서 쇠비린내가 풍겼다. 종사관 김수철이 내 팔을 잡았다.

나으리, 어찌 손수……

비켜라, 피 튄다.

김수철은 물러섰다. 나는 아베를 베었다. 목숨을 가로지르며 건너가는 칼날에 산 것의 뜨겁고 뭉클한 진동이 전해졌다.

『칼의 노래』(김훈, 생각의 나무)

칼에 베어본 적도 있고, 못에 찔려본 적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칼싸움하던 시절에 태어나지 않은 걸 고마워합니다. 베는 칼이 아닌, 치는 칼이 더 무서운 법인데 작가는 번번이 베는 칼을 뽑는군요. 김훈, 이 잔혹한 인간은 충무공을 빌미로 사람을 여럿 베었답니다. 몰락한 러시아 귀족 푼어치 같은, 이 뜨거운 허무주의자는.

이윤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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