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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당나귀도 먹었다는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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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인류가 커피를 마신 역사에서 브라질·쿠바가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페르시아에서는 이미 9세기부터 '카와''분크'라는 이름으로 커피가 통용됐다.

16세기 오스만제국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잡담하다가 결국 군주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곤 했던 '불온의 온상' 커피 하우스를 폐쇄했지만 커피를 찾는 이들의 발길을 끊게 할 수는 없었다.

아라비아의 남예멘에는 염소 떼의 잠을 쫓았던 '버찌처럼 생긴 붉은 열매'를 죽을 쒀 먹은 이슬람 성직자가 심장이 빨리 뛰고 정신이 맑아져 잠을 자지 않고도 피곤을 몰랐다는 커피 관련 전설이 전해진다.

굶주림을 면하려는 본능이 인류가 세계 탐험에 나섰던 숨은 원동력이었다는 것, 한 국가나 부족이 다른 지역을 식민화하면서 영양학적인 표준화가 이뤄진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침략자와 함께 들어온 음식문화에 식민지 주민들이 저항을 포기하고 젖어들거나, 침략자들이 식민지의 향토 음식을 과시하는 과정 속에서 음식문화가 교류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관심의 범위를 인종학·사회학·의학·기후학 등까지 넓혀 꿀·육류·곡물·기름·빵·포도주·생선·가금류·설탕·향료·초콜릿·채소 등 인간에게 필수적인 먹거리들의 백과사전식 역사를 엮어 냈다.

말은 기원전 4천년께 지하세계와 천상을 연결하는 주술적 상징을 자리잡고, 승마용이나 노역용으로 각광받으면서 식용 대상에서 멀어졌다.

당나귀는 프로방스 지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식용이었다. 양은 털 때문에 기르다 식용으로도 애용하게 됐다. 진귀한 메뉴가 각광받았던 아테네와 로마의 성대한 잔치 식단에는 암퇘지의 음부나 젖꼭지, 송아지의 고환을 넣은 스튜가 오르기도 했다.

구약 성서에서 술에 대한 언급은 대홍수부터 시작한다. 창세기에 노아가 하루는 포도주에 취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포도주는 기원전 6천년께 포도를 으깨 주스를 만들던 중 실수로 남겨둔 포도즙이 발효되면서 제조방법을 발견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맥주도 마찬가지다. 이집트 전설에는 보리를 끓인 반죽이 발효돼 맥주를 발견하게 됐다는 대목이 있다.

철갑상어 알, 캐비어 중 최상품으로 치는 카스피해산(産)은 철갑상어를 잡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히거나 겁을 주면 스트레스로 아드레날린이 분비돼 알이 죽거나 고약한 냄새가 난다. 때문에 러시아 어부들은 철갑을 두른 머리 중 취약부분을 정확히 때려 마비시켜 알의 선도를 유지한다.

상·하권 합쳐 1천여쪽에 육박하는 신간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큰 주제를 끄집어내기는 힘들다. 음식 항목별 역사가 되풀이돼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음식의 역사는 배고프지 않은, 풍요의 시대에 걸맞은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경계한대로 굶주리고 있는 지구의 다른 켠을 망각한다면 슬픈 일일 것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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