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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줄' 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헬기가 마을 상공에 나타났을 때 이제 살았구나 하고 안도했습니다."

경북 김천시 대덕면 관기리 곽상수(54)씨는 헬기가 실어다준 라면과 생수 등을 집안으로 옮기며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수마가 휩쓸고 간 지 사흘 만에 나타난 헬기는 생존을 보장하는 전령사였다. 여느 재난 현장과는 달리 이번 수해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장비는 단연 헬기였다.

지난달 31일 태풍 '루사'가 휩쓸고 간 뒤 외부와 차단된 김천과 강릉 인근 마을에서 헬기는 '생명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산사태로 길이 막히고 급류에 도로가 사라져 헬기 외에는 현장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흙탕물을 마시며 연명하던 이재민들에게 헬기가 나타나 생수·이불·가스버너·양초·라면 등 생필품과 가축사료를 공급하면서 이들은 절망감에서 벗어났다. 이 때문에 수해를 당한 지방자치단체들은 헬기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까지 벌인다.

폭우가 그친 뒤 강릉·김천지역에서 활약 중인 헬기는 각각 12대와 15대. 경북·강원도 소방본부와 산림청, 군부대에서 지원한 헬기들로 러시아제 KA-32T 헬기에서부터 10명의 인원과 0.5t의 물픔을 실을 수 있는 소형 헬기까지 기종도 다양하다.

1주일 동안 고립됐던 강원도 양양군 면옥치리 송종순(52·여)씨는 "헬기가 구호품을 싣고 왔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며 "헬기가 없었더라면 고립지역의 주민 대부분이 탈진했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경기도 소방본부 항공대 김재곤(47)조종사는 "새벽부터 하루 12차례 물품과 진료·방역반을 수송하느라 아침은 한번도 먹지 못했다"며 "헬기에 손을 흔들며 기뻐하는 수재민을 보면 피로가 싹 가신다"고 했다.

강릉=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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