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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파워 소프트 코리아] 5. 소프트 파워를 읽는 이어령과의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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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Q 한국의 소프트 파워 가운데 특히 욘사마 열풍과 같은 현상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런 힘을 정착시킬 수 있는 전략이 있다면.

A 대중문화란 원래가 비누처럼 유행이라는 '거품'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신데렐라의 마차는 자정이 지나면 호박으로 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유리구두' 한짝이 남아있었기에 이야기가 진행되고 마법은 현실이 된다.

튼튼한 기초과학의 토양 위에서 실용적인 응용기술이 꽃 피듯이 본격 문화가 그 유리구두 효과를 주는 것이다. 드라마투르기(Dramaturgie.극적 효과를 높이는 드라마나 희곡의 구성 방법)와 대화의 문학성, 영상의 회화성, 메시지의 철학성, 그리고 그것을 가시화하는 모든 과학기술과 최종적으로는 자본력과 투자의 시장성이 소프트 파워를 뒷받침한다. 산업 인프라처럼 문화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경주의 문화엑스포가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다. 지방자치단체가 투자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 3D 입체영상 '화랑영웅 기파랑전'을 세계적인 영상배급사 시맥스.아이웍스사에 수출한 것이다.

Q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보아가 지난 연말 일본의 국민적 행사라 할 수 있는 NHK방송의 '고하쿠우타갓센(紅白歌合戰)'에 출연해 인기를 모았다. 보아가 우리에게 주는 '희망'과 '약속'은 무엇인가.

A 보아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오디션을 치르는 오빠를 따라갔다가 우연히 발탁되었다. 하지만 오늘의 그 열매는 우연과 행운이 아니라 장기적이면서도 철저한 기획사의 전략, 그리고 본인의 꾸준한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다. 처음부터 국내시장보다 문화시장성이 좋은 대상국을 정해 놓고 영어와 일어를 배우고 한국식 비즈니스가 아닌 일본식 비즈니스로 진출했다. 아무로 나미에.우타다 히카루 등 일본 10대 가수의 부진과 공백을 틈탄 타이밍, 음반사 아벡스, 음반 출판사 그리고 SM 재팬의 매니지먼트 등 현지 기획사와 유통망을 이용했다. 문화권이 같은 일본.중국 등 아시아를 석권한 다음 세계로 뻗어간다는 소프트 산업의 진로를 제시해 주고 있다. 그 결과 100억엔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CF 개런티, 콘서트 수입, 캐릭터 상품 등을 합치면 수입은 훨씬 많다.

세계 음반시장 점유율을 보면 미국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2위인 일본이 10~20% 사이에 있다. 한국은 아직도 0.5%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희망은 목소리 큰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독창성과 개성.꿈을 지니고 넓은 세계로 비상하는 젊은이들의 '끼'에 있다는 사실을 10대의 보아가 보여준 것이다. 눈물겨운 일이다.

Q 소프트 시장은 열려 있다. 벽이 없는 초국가적인 넓은 무대 위에서 벌이는 경쟁이다. 한국 소프트 파워, 소프트 코리아의 전망을 이야기해 달라.

A 지금 일본의 소프트 업계는 프로그래머 150만명의 '대(大)실업시대가 온다고 야단들이다. 영어를 더 잘하고 인건비는 더 싼 인도와 중국의 프로그래머들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정치적으로는 진보다 보수다 해서 보혁갈등이 심하지만, 소프트 파워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100년 전 구한말이나 반세기 전 해방 직후의 상황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땅을 파봐야 석유는 나오지 않는다. 뚫어야 할 시추공은 바로 한국인의 머리와 가슴이다. 묻혀 있는 이 창조력이야말로 21세기의 번영을 담보하는 자원이다. '싱글 리얼리티'에서 양쪽을 아우르는 '패러 리얼리티'로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세계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21세기의 막차를 놓치게 된다. 그렇다. 나이와 관계없이 머리가 굳은 사람들이 '소프트'해져야 '소프트 코리아'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영 역사의 플랫폼에 홀로 남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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