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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 '이유있는 분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미국과 선진국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라."

"지구보호를 포기한 지구정상회의의 결과는 분노와 절망감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흘간 진행된 지구정상회의를 마무리하는 지난 4일 폐막 회의장.

폐막연설을 위해 단상에 선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수십명의 환경·시민단체 회원들이 쏟아내는 거센 야유에 몇번이나 연설을 중단해야 했다. 미국의 환경보호정책과 빈국 지원 노력을 옹호하는 파월 장관의 발언에 회의장에 있던 시민단체 회원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앞서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WWF)·그린피스 등 국제 환경 및 구호단체 회원들은 지구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세부 실천내용을 담은 '이행계획'이 발표되자 집단퇴장으로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이번 지구정상회의는 '속빈 강정'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각국 대표들은 말만 번지르르할 뿐 이행계획의 실천 시한이나 지원금 배당 등 가장 민감한 부분은 선진국의 이익을 고려해 '구렁이 담넘어 가듯' 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국제기업행동(BASD)' 등 국제기업 단체들은 회의결과에 "매우 만족한다"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돼온 다국적 기업들은 회의기간 중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로비를 했다.

각국 대표단을 초청해 개막 첫날부터 호텔 만찬장에서 전세계에서 공수된 온갖 산해진미로 만찬을 벌이고 향응을 제공했다. 최종 이행계획에 영향을 미치길 희망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온 이들로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유엔은 회의기간 중 '지속가능한 발전을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기업들이 요청한 2백여건의 공공·민간제휴 프로젝트를 공식 승인했다.허가된 프로젝트 중에는 환경오염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계획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환경보호와 빈곤퇴치 의지가 사라진 회의장에서 경찰의 저지를 받으며 "지구를 살리자"는 피켓을 들고 항의하는 환경단체 회원들의 모습에서 리우 정상회의에 이어 또 하나의 말잔치로 끝나고만 요하네스버그 회의의 실상을 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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