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없는 기업은 가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9면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광고카피가 한동안 유행했었다. 그러나 기업은 변신이 의무다. 변신하지 않으면 유죄다.

대표적인 변신 사례로 항상 등장하는 회사는 핀란드의 노키아다. 1백년 넘게 펄프·제지사업만 하던 노키아는 한때 화장지·타이어·고무·가전 등으로 다각화했다가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1992년 취임한 올릴라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통신사업에 주력하면서 세계 1위의 휴대전화 메이커이자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변신 스토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변신 내용이 노키아보다 오히려 한수 위인 회사가 미국 웨스팅하우스사다.1백년 넘은 주력사업을 팔아치우면서 회사간판까지 아예 바꿔 단 케이스다.

이 회사는 원래 발전설비와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이었다. 우리나라와의 인연도 꽤 깊다. 우리나라가 1970~80년대 원자력발전소를 대거 건설할 당시 이 회사는 고리 1~4호기와 영광 1~2호기 등의 건설프로젝트에 주계약자로 잇따라 참여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열차용 에어브레이크를 발명한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1886년 미국 피츠버그에서 창업한 회사다. 그후 발전과 송전 분야에서 GE와 쌍벽을 이루면서 성장했고,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가전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그러다가 1993년부터 대변신을 시작했다.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마이클 조던은 방송과 군용 전자장비 사업에만 집중키로 결정했다.

95년 CBS 방송국을 인수하면서 방위사업도 포기하고 방송사업에만 전념키로 했다. 97년엔 주력사업인 화력발전 사업을 지멘스에 매각하면서 회사 이름마저 CBS코퍼레이션으로 바꿨다. 본사도 피츠버그에서 뉴욕으로 이전했다. 이처럼 변신을 주저하는 기업, 변신을 주도하지 않는 CEO는 주주와 고객에게 죄를 짓는 것이 된다. 웨스팅하우스는 세계적인 굴뚝기업에서 공장없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극적인 변신을 이뤄냈다.

자신이 인수한 회사의 이름을 간판으로 내걸면서 1백년 역사의 족보도 포기했다. 미래를 위해 과거와 과감히 단절할 수 있어야 기업은 영원할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