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책편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새 연재물을 선보입니다. 책 속의 의미있는 글귀를 붙들고 매일 아침 편지를 전할 예정입니다. 첫 주자는 소설가 이윤기씨입니다. 이 코너가 독자 여러분의 마음을 적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완광록이… 좋은 수레를 가지고 있었는데, 빌려달라는 사람에게는 모두 빌려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모친을 장례지내면서 그 수레를 빌리고 싶었으나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완광록이 나중에 그것을 듣고 탄식하며 "나에게 수레가 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감히 빌려가지 못하게 했으니 이 수레를 어디에 쓰겠는가?"하고는, 마침내 불살라 버렸다. 『세설신어』 (김장환 역, 살림)

5세기 위진 남북조 시대의 소설가 유의경이 쓴 짧은 글 모음에서 따온 것입니다. 당시 문인·학자·현자·은자들 이야기를 아우르지요. 죽림칠현의 청담논변은 이 책의 백미입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짧아서 길어도 3백~4백 자를 넘지 않습니다. 심지어 10자에 그치는 것도 있지요. 아, 이렇게 짧은 글로도 한 세상씩 넉넉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을. 글 길게 써온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아껴가며 읽습니다. 중국놈, 중국놈 하지 맙시다. 이윤기<소설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