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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글로벌위어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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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구에서 열이 난다.” ‘환경 전도사’로 변신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즐겨 쓰는 말이다.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를 빗댄 경구다. 그러나 회의론이 만만치 않다. 특히 지난겨울 북반구에 이상한파와 폭설이 몰아치자 “온난화는 어디 가고 웬 한랭화?”란 냉소가 쏟아졌다. 짐 인호프 상원의원(오클라호마주)은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 공로로 고어가 받은 노벨평화상을 반납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 두텁게 쌓인 눈을 뭉쳐 이글루를 만든 뒤 ‘고어의 새 집’이란 표지를 붙여 조롱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한파와 폭설 역시 온난화와 무관치 않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지적이다. 북극이 따뜻해지자 한기(寒氣)를 감싸고 돌던 제트기류가 약화돼 그 틈새로 찬 공기가 남하하며 아시아와 유럽, 북미가 큰 추위를 겪었단 거다. 태평양 해수 온도가 높아져 생긴 수증기가 한파와 부딪쳐 큰 눈을 퍼부었고 말이다. 당시 남반구가 폭염과 폭우에 시달린 것만 봐도 ‘온난화=사기극’이란 주장은 섣불렀다.

계절이 뒤바뀐 요즘 지구촌의 남과 북은 정반대의 시련을 겪고 있다. 여름을 맞은 북반구는 살인적인 무더위로 각국에서 사망자가 속출하는 중이다. 반면 겨울철인 남미에선 혹독한 추위로 희생이 잇따른다. 온난화를 ‘길고 더운 여름+짧고 따뜻한 겨울’이라 여긴 건 오해였던 셈이다. 예전보다 여름은 훨씬 더 덥고, 겨울은 훨씬 더 추워졌다. 폭설과 폭우, 극심한 가뭄이 이쪽 저쪽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홍수·폭풍·산불도 더 빈번하고 더 세졌다.

이런 총체적 기상 이변을 온난화란 한마디로 일컫기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글로벌 위어딩(global weirding)’이란 신조어가 등장한 건 그래서다. ‘지구 기후의 비정상화’쯤 되겠다. 말이 바뀌어도 원인은 매한가지다. 급증하는 에너지 소비가 문제다. 2050년까지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이 최소 두 배로 늘 거라는데 그새 기후는 얼마나 비정상적이 되고 피해는 어떠할지 짐작조차 안 간다. 올여름 남아공과 브라질에서 펭귄들이 수백 마리씩 떼죽음한 걸 의미심장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 추세가 지속된다면 30년 내에 지구상 생물체의 5분의 1은 사라질 거란 전망이다. 과연 원인 제공자인 인류는 무사할 수 있겠는가.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