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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 예우하고 덕 보는 오바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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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주목할 것은 회의장인 백악관 루스벨트룸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오바마와 손을 잡고 나왔다는 점이다. 클린턴이 재계 친화적이란 이유에서다. 사실 지난주 백악관은 ‘클린턴 3기 정부’를 연상케 했다. 화요일엔 백악관 예산국장에 제이콥 류 클린턴 백악관 예산국장이 임명됐다. 그의 상관인 백악관 비서실장은 클린턴 보좌관 출신이고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클린턴 정부 재무장관이었다. 오바마는 이날 클린턴 정부 때의 에이즈정책국장과 TV 앞에서 대책을 발표했다. 상원에선 클린턴 보좌관이던 케이건에 대한 대법관 인준 청문회가 열렸다. 다음 날 의회는 클린턴 사람인 리처드 홀브룩 특사를 불러 아프간 청문회를 열었다. 오바마는 이날 힐러리와 아프간 대책을 숙의하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 경제 현안 회의에 나타난 것이다.

클린턴의 전면 등장은 워싱턴에서도 조금은 이례적이다. 전직 대통령들은 국제 현안이나 사회활동에서 역할을 찾았다. 부시 전 대통령은 아이티 지진 구호, 카터 전 대통령은 사랑의 집 짓기 운동에 나섰다. 미 언론 평가는 찬반으로 나뉜다. 물론 젊은 대통령의 국정경험 부재를 비꼬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오바마가 매사추세츠주 마서스비니어드 섬으로 여름휴가를 떠날 것으로 알려지자 “클린턴의 여름휴가까지 베끼느냐”는 비판이 워싱턴 포스트에 실렸다.

하지만 퇴임 후 굴곡 많은 우리의 전임 대통령들을 돌아보면 미국 내 논란은 부러운 얘기다. 미국에서 전임 대통령과 후임자는 최대한 예의를 갖춘다. 전임자가 후임자의 정책을 앞장서 비난하는 경우도, 후임자가 전임자의 업적을 깡그리 무시하는 경우도 드물다. 더 나아가 클린턴의 경우처럼 정권교체 세력 내의 후원과 지원도 자연스레 이뤄진다. 정권교체는 말할 것도 없지만 설사 정권이 재창출돼도 대통령이 바뀌면 전임 정권에 칼을 들이대는 우리 정치문화와는 거리가 크다.

국회가 내세우는 입법 기준은 글로벌 스탠더드다. 그런데 ‘빌러리(Billary=빌 클린턴+힐러리 클린턴)’의 경륜과 존재를 인정하고 손을 내미는 오바마 정치가 여의도엔 왜 수입되지 않은 것일까. 여권 내 자중지란으로 국정이 표류한 지 오래인데도 말이다.

최상연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