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넘어'춤추는 처용아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사내 몸이 춤 없이 멋이 되는가.' 옛날 한량(閑良)의 세계에 내려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은밀한 전통마저 요즘엔 끊어질 위기에 처하면서 남성춤,이른바 '남무(男舞)'는 거의 사라질 형편이다.

절박한 몸부림인가. 구전설화인 '처용(處容)'의 아비처럼 춤추는 사내들이 버선발로 관객을 찾아 나선다. 공연기획 이일공과 호암아트홀이 주최하는 '남무,춤추는 처용아비들'이 그런 자리다. 9월 6~7일 호암아트홀에서 선보인다.

여덟 사내의 이름은 문장원·황재기·김덕명·정인삼·이윤석·하용부·김운태·박영수다. 이 가운데 세 사람은 여든이 넘었다. 연출자 진옥섭씨는 "지금껏 무용가로 일컬어진 적은 없지만 춤꾼으로서의 자존심은 당당한 사람들"이라고 이들을 소개했다.

▶문장원(87)의 '동래입춤'=문씨는 26대째 내려오는 부산 동래 토박이로 열다섯 무렵부터 기방을 출입한 희대의 한량이다. 와끼·나루도·아라이·봉래관·동래관 등이 1930년대 그가 두루 놀던 기방이다. 여름이면 해운대·광안리 등 청송이 우거진 해변에서 기생을 불러 종일 풍악을 잡히며 놀았다고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 야유' 예능 보유자. '입춤'은 고난도의 즉흥춤이다.

▶황재기(81) '고깔소고춤'=흔히 소고는 고깔소고와 채상소고로 나뉜다. 한 손에 소고를 들고 머리에 꽃을 이고 추는 춤이 고깔소고다. 호남 우도 농악의 그것이 일품인데, 그 명인이 황씨다. 열일곱살부터 농악을 배웠다. 가볍게 뛰며 발을 들어 추는 '앉을상', 빠른 회전이 있는 '매도지' 등이 있다.

▶김덕명(80)의 '양산사찰학춤'=경남 양산의 통도사에서 전승되어온 학춤이다. 학이 전한 선비의 춤으로 통한다. 이웃 '동래 야유'의 학춤이 천의무봉의 자연스런 멋이라면,양산의 그것은 보다 양식화한 춤이다. 그래서 정교한 몸짓에는 기교가 필요하다. 김씨는 해방 후 면서기를 하다 끼를 주체 못해 춤꾼이 됐다.

▶정인삼(61)의 '진쇠춤'=정씨는 타고난 농악판의 상쇠다. 그를 풍류인생으로 이끈 것은 한국전쟁 당시 포화(砲火)였다. 6·25때 집이 폭격을 맞아 고모네집에 얹혀살았던 그는 어느 양화점에서 내다본 바깥 풍경에 마음이 동했다. 공연나온 국악단이 불어대는 쌍호적은 그의 애간장을 도려내는 소리였다.

▶이윤석(54)의 '덧배기춤'=덧배기는 경상도식 자진모리 장단인데, 마당춤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고성오광대놀이'에 나오는 춤사위들을 즉흥적으로 엮어 춘다. 굵직한 몸집을 충분히 활용하여 굵게 매듭을 짓는 게 일품이다. 에너지의 강약이 정확히 드러나는 춤이다. 이씨는 풍류객의 농사꾼 후예다.

이밖에 40대의 세 남자가 가세한다. '밀양북춤'의 하용부(47),'채상소고춤'의 김운태(41),'목중춤'의 박영수(40)다. '승무' 등 무형문화재 중심의 '라이선스 무용'이 아니라,지금 돌아보지 않으면 곧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지 모를 민초들의 질박한 춤 무대다. 전통춤 공연으로는 드문 기회다. 6일 오후 7시30분, 7일 오후 4시30분·7시30분. 02-766-5210.

정재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