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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중국 기회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중국의 탕자쉬안(唐家璇)외교부장은 중국을 보는 한국인들의 주된 시각을 '중국 기회론'이라 단언했다. 국내 중국 관련 서적이나 언론 보도 역시 중국 열풍 일색이니 틀린 말도 아니다.

'중국 위협론'이 엄연히 병존하는 워싱턴과 도쿄(東京)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30년간 중국과 외교관계를 유지한 양국이 고작 수교 10주년을 넘긴 한국과 달리 중국을 경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중국의 통치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등 자신들이 중시하는 기준에 중국의 국가 운영방식이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국가역량으론 '중국 위협론'을 앞세운들 실익이 없다. 위협에 대적할 이렇다 할 수단도 없다. 또 중국의 위협을 들먹여 근거부족한 예언의 희생이 돼선 안된다는 판단도 중국에 겁없이 접근하는 이유다.

아무튼 통계만 봐도 한·중간의 밀착 속도는 놀랍다. 한국의 수출대상국 가운데 중국은 미국에 이어 2위, 또 지난 10년간 미국 다음으로 중국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 수교 첫해를 빼곤 줄곧 무역흑자를 기록했으니 이제까지 장사는 잘한 셈이다.

그러나 한·중관계의 이러한 발전은 중국이 보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 덕분에 가능했다. 그리고 중국의 계산은 지난 반세기 우리가 동맹과 우방으로 지냈던 미국·일본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물론 한국의 경제력이 주는 매력도 무시하지 못할 요소지만 이 또한 미·일과의 관계를 떠나 생각하기 힘들다.

문제는 '중국 중심의 한·중관계' 구도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중국을 상대하면서 '기회론'에만 몰입해 있다는 데 있다. 또 미국과 일본을 대체(代替)하는 상대로 중국을 인식하고 싶은 설익은 기대도 문제다.

그런데 이런 기대가 정작 현실로 다가오길 원한다면 중국을 상대로 우리 몸값을 불려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미·일의 동아시아 전략틀 안에서 한국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미·일에 비춰진 한국의 중요성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일본 외무성이 지난 6월 미국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미국의 주요 파트너로 꼽은 나라 가운데 일본이 46%, 중국 22%인 데 비해 한국은 2%에 불과하다. 또 지난해 말 일본 관방청의 조사 결과 일본인들이 느끼는 친근감에서 한국은 14.8%로 중국의 12.3%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중국을 움직일 이렇다 할 수단이 마땅치 않고 게다가 우방에 있어 한국의 비중이 이 수준이라면 우리의 선택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중국 위협론'에 대한 대비는 역량 밖이니 미·일 등에 미뤄놓고 '중국 기회론'에 수반될 '위험부담(리스크)'에 신경쓰는 게 우리 몫이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대(對)중국 밀착에 따를 리스크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법규에 점차 친숙해질 것이고 중국이 법치(法治)문화에 익숙해질수록 통치 시스템에서 비롯된 위험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대중국 거래의 리스크를 줄여가는 일 또한 시장경제의 견인차 미국과 일본을 무시하곤 생각하기 어렵다. 한국이 중국과 호혜협력의 진정한 동반자가 되려면 중국을 향한 발빠른 움직임 못지 않게 미·일을 우리 곁에 붙들어 놓는 작업이 절실하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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