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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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578년 티베트의 전생활불(轉生活佛) 소남 갸초는 몽골 칸의 초청을 받아 칸이 있는 칭하이(靑海)지방으로 간다. 당시 몽골의 알탄 칸'은 그에게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를 선물한다.

'달라이'는 몽골어로 바다를 의미하고 '라마'는 스승을 뜻한다. '달라이 라마'라는 호칭은 이렇게 탄생했고 1642년 이후 티베트의 원수가 된 전생활불의 속칭으로 불렸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제14대다.전생활불이란 죽은 달라이 라마가 환생해 새 달라이 라마로 책봉된다는 신앙에서 비롯된 말이다.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의 국가 원수로서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은 상게 갸초로, 그는 제5대 달라이 라마이며, 로산 갸초의 제자다. 그는 '문수리근본의궤경'(文殊利根本儀軌經)의 예언을 인용해 티베트는 관음보살이 교화의 땅으로 정한 곳이며 달라이 라마는 관음보살의 화신이라는 주장을 이론화했다.

제6대 찬얀 갸초 때 청(淸)은 달라이 라마를 베이징(北京)으로 강제 연행하려 했고 티베트 민중이 이에 저항하면서 중국과의 기나긴 투쟁이 시작됐다. 청의 지배 아래서 달라이 라마의 선출방법은 흐트러졌다. 또 제9대부터 12대까지는 어린 달라이 라마가 선출돼 권력투쟁의 희생자가 됐다. 10대 달라이 라마는 중국으로부터의 독립과 근대화 정책을 취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달라이 라마 14대는 1959년 인도로 도망쳐 망명정부를 수립,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그는 세계 각지를 돌며 티베트의 독립과 라마교의 이념을 설파했고 노벨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이 국제사회에서 강화되면서 달라이 라마의 활동반경도 급격히 좁아졌다. 한국에서도 그의 초청행사는 당국의 비자발급 거부로 취소됐고 이번엔 조계종이 나선다고 하지만 이도 역시 미지수다.

요즘 러시아 외무부 앞에서는 연일 '달라이 라마에게 비자를'이라는 피켓을 든 항의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9월 초 러시아 방문을 희망하는 그에게 러시아가 비자발급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9월에도 달라이 라마의 몽골 방문을 위한 통과비자 요청을 거부했었다.

달라이 라마는 지금까지 다섯 차례 모스크바를 방문했었고 그 마지막은 91년이었다. 모두 종교를 아편으로 규정한 소련 시절의 일이다. 공산주의 시절에도 비자를 받았던 달라이 라마에게 민주 러시아의 '민주'는 그들의 정치적 수사일 뿐 오히려 더 가혹한 현실일 뿐이다.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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