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본중국사람&내가본한국사람]中 겉만 '만만디' 실속앞엔 '신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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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71면

'빨리빨리'와 '만만디(慢慢的·천천히)'.

중국인이 보는 한국인,한국인이 보는 중국인의 특성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다.두 나라가 수교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클릭 한국(點擊韓國)』이란 책을 내고 중국의 인민라디오 방송에서 '한국을 들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마쉐(馬雪·23)씨는 '빨리 빨리'라는 코드로 한국 문화를 들여다 보는 전형적인 중국인이다. 베이징(北京)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고 한국에서 유학까지 한 馬씨는 "한국인의 성격이 급하다는 것은 외국인이 한국인을 보는 가장 일반적인 관점"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홍콩·선전(深?)·다롄(大連)·베이징(北京) 등지를 두루 거쳐본 현대종합상사 베이징 지사의 이윤기(李允基·41)차장의 생각은 다르다. "만만디만으로는 중국인들을 절대 제대로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중국인 馬씨보다는 한국인 李씨가 적어도 한 치쯤은 더 깊이 상대방을 파고들어간 것일까. 두 사람이 각기 털어놓은 상대방에 대한 인상을 대담 형식으로 정리했다.

馬=한국인들은 뭐를 하든 '빨리빨리'를 외쳐요. '미치겠다'라는 말도 필수고요. '빨리빨리'와 '미치겠다'가 한국 민족의 아주 본질적인 특성처럼 여겨질 정도예요.

한국 유학 시절 강의 시간을 코 앞에 둔 한 여학생이 도서관 복사기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연신 짜증을 내는 모습을 봤어요. '한국 사람들 성격 참 급하고,이상하구나'라고 생각했지요. 미리 준비하지 못한 자기 탓은 뒤로 돌리고 시간 탓, 남의 탓만 앞세우는 모습이 딱해 보였어요.

李=글쎄요. 그런 견해는 한국인을 너무 얕게 봤기 때문에 나온 결론 아닐까요. 중국인을 관찰할 때도 똑같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거예요. '중국인은 언제나 만만디'라구요.

그러나 만일 '만만디'로만 중국인을 들여다 보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넌센스라고 봐요.일례로 비즈니스 전쟁에서 한국인들보다 더 발빠르게 뛰고, 더 잽싸게 이윤을 챙기는 중국인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이제는 좀더 복합적인 관점에서 중국인을 관찰해야 합니다.

예를 하나 더 들지요. 중국인들은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만만디로 일관합니다. 그러나 일단 계약 내용이 자신의 이익에 맞는다고 판단되면 빠르기가 비호 같아요. 요컨대 명분을 따질 때는 만만디로, 실리를 다툴 때는 '콰이콰이(快快·빨리빨리)'로 나가는 거지요.

馬=난 찬찬하게 한국인들을 관찰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서두르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전 '빨리빨리'를 한국인의 민족적 특성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된거죠.

한국인들의 단점은 거의 '빨리빨리'에서 나와요. 거친 일처리, 무례함, 어거지, 우격다짐이 다 그런 것들이죠. 물론 한국인들의 급한 성격이 발전의 힘이 됐을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급한 마음은 작은 성취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몰라도 대국(大局)을 아우를 수는 없어요. 그만큼 시각이 좁아지고,비전도 거칠어져요. 한국인들이 이런 특성을 고치지 않으면 '일류'가 되기는 어려울 거예요.

李='빨리빨리'라는 특성이 한국인에게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 단점을 덮을 만한 장점도 한국인들은 갖고 있다는 거죠. 중국인에 대한 고찰도 마찬가지예요. 한꺼풀 더 들여다 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해요.

사실 중국인은 지구상에서 이해타산이 가장 빠른 민족 중 하나일거예요. 다만 겉으로 그렇지 않은 양 포장하는 기술과 재주가 아주 탁월할 뿐이죠. 실제 중국인과 거래를 하다 보면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2년, 계약 뒤 투자가 진행되는 데 1개월 정도 걸리는 사례들이 수도 없이 많아요. 중요한 점은 겉으로 보이는 인상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데 있어요. 남을 처음부터 의심하고 들어가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섣부르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단순한 인상을 배제하기, 그리고 문화·역사적으로 깊이있는 이해를 하려고 애쓰기, 이게 바로 중국인에게 사기당하지 않고, 더 나아가 중국인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접촉 빈도가 잦아지면서 한국에 흥미를 느끼는 중국인이 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중국인은 아직 그리 많지 않다. 반면 중국인과 중국 문화에 관심을 갖는 한국인은 상당수다. 중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여전히 '빨리빨리'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한국인들은 '만만디를 넘어선 그 무엇'을 중국인에게서 보기 시작했다면 그건 바로 관심의 차이 탓일까.

10년째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는 신영수(愼榮樹)한인회장이 내린 결론이다.

"수교 후 인적 교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양국은 더욱 많은 갈등과 오해에 부닥치게 될 겁니다. 그러나 이는 양국 교류의 폭이 넓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상대방을 진지하게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를 유지한다면 한·중 관계는 어느 분야에서나 큰 실패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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