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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아내&중국인남편]진현미·장후이청 부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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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71면

"싸울 때가 많아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많거든요.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절실해요."

중국 문학에 흠뻑 빠지는 바람에 중국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는 한국의 여자 대학원생. 그리고 중국 남단 하이난(海南)성에서 부동산·금융·호텔업으로 실력을 쌓아가던 중국의 청년 실업가.

이렇게 만나 어느덧 결혼 6주년을 훌쩍 넘긴 진현미(陳賢美·34)·장후이청(蔣會成·35)부부는 한·중 커플 생활의 첫 주제로 '이해'를 꼽았다. 하기야 말과 문화가 술술 통하는 같은 민족끼리의 부부도 티격태격 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같은 게 하나도 없는 이민족 커플의 어려움은 오죽했을까.

이화여대 대학원 중문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陳씨가 하이난성의 '잘 나가는' 청년 실업가 蔣씨와 만난 것은 1993년. 당시 하이난성 투자 유치단의 일원으로 서울을 방문한 蔣씨는 통역을 맡았던 陳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다.

"너무 귀여웠어요.그리고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렇지만 첫 만남 뒤 두 사람이 결혼하기까지는 3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자기 중심적인 문화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한국과 중국에서 외국인과 결혼하겠다고 나서기가 어디 쉬운 노릇인가.

"남편과 함께 한국에 왔던 당시 롼충우(阮崇武)하이난성 성장이 남편에게 저와의 결혼을 적극 권했대요. 阮성장은 장쩌민(江澤民)주석이 상하이(上海)시장으로 있을 때 주룽지(朱鎔基)총리와 함께 부시장을 맡았던 실력자예요. 함께 왔던 왕샤오펑(王嘯風)당시 부성장(현 성장)도 '나도 그 학생에게서 여러가지 좋은 인상을 받았다'며 '꼭 결혼하라'고 남편한테 당부했고요."

그후 두 사람의 사랑은 전화와 e-메일을 통해 길게 이어졌다. 결국 어느날 蔣씨는 용기를 내 陳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대뜸 "결혼하자"고 말했다. 陳씨는 당황스러웠지만 기뻤다고 한다.

이 때부터 蔣씨는 승승장구했다. 중국 남부지역 내 코카콜라 영업권을 따낸 것도 그 때쯤이었다. 현재 蔣씨는 자산규모 수십억위안(약 수천억원)의 대그룹을 일궈냈다.

그 뒷그늘이 陳씨를 가릴 법도 하건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陳씨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하이난성과 베이징을 오가며 억척같이 박사과정을 마쳤다.

陳씨는 현재 중국 최고 명문 베이징 대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한국인 아내요? 장점이 많지요. 문화적 소양이 아주 높은 점이 첫째예요. 당연히 현명하지요. 아이들 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요. 모든 점에서 안심이 되고, 그리고 자랑스러워요."

아내의 남편 자랑도 간략하지만 진하다.

"성실해요. 사업 추진력이 왕성하면서도 가정에 아주 따뜻하고요."

그렇다고 갈등이 없었을까.

"남편은 사업 접대차 집을 비우는 일이 너무 잦아요. 같이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요. 그리고 중국 남자들이 의외로 권위적이에요. 남 앞에서는 아내에게 져주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고집이 아주 세거든요."

"아내가 제 사업에 냉정한 것 같아 섭섭할 때가 더러 있었어요. 사업에 시달리고 들어오면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길 기대했는데 오히려 엄살떤다고 핀잔만 당할 때도 있었고요."

이 때문에 냉전도 많았다. 그러나 결국은 이해로 다시 만났단다. 어차피 갈등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갈등을 좋아해 보자고 그 때마다 굳게 마음먹으면서.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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