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지원금 졸속 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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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달 초 수해 때 큰 피해를 본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金모(23·여·회사원)씨는 동사무소 직원이 다녀간 후 어이가 없었다. 피해 실태 조사를 위해 자신의 집을 둘러보는 데 채 5분이 안 걸렸다.

金씨가 집안에 들어온 오물과 진흙을 청소하는 동안 현관에 서서 집안을 훑어보고 지원금 입금 계좌번호를 물어보는 것이 전부였다.

金씨는 "모래가 들어가 고장난 오디오와 컴퓨터, 물에 젖어 못쓰게 된 가구의 피해액만 5백만원 이상"이라면서 "벽지와 장판만 보더니 '한 1백만원 되겠네'라며 뒤돌아섰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집중호우로 침수피해를 본 시내 6천7백4가구,1만6천1백65명을 대상으로 가구당 90만원씩, 총 60억3천3백60만원의 지원금을 지난 12일 주택수리비조로 각 구청에 지급했다. 이는 정부지원 기준 60만원에 시 자체 재해구호기금에서 30만원이 추가된 액수. 강서구의 1천2백여가구, 양천구 2천여 가구, 광진구 1천여가구 등 침수피해 신고를 한 가구가 지급 대상이다. 현재 각 동에서는 파악한 피해 주민들의 은행계좌로 지원금을 입금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도 수해 피해가 컸던 중랑구·동대문구·강서구 등의 침수 가구에 지원금이 지급된 바 있다. 당시에도 역시 겉핥기 조사가 지적됐었다.

중랑구 중화2동 반지하방에서 거주하다 지난 여름 수해로 큰 피해를 본 문혜수(43·여·주부)씨는 "아직도 곰팡이 냄새가 나는 침대와 가구를 보면 분이 가라앉지 않는다"고 흥분했다.

文씨는 지난해 봄에 입주하면서 침대·소파 등 대부분의 가구를 새로 들여왔는데 여름 침수로 모두 물에 잠겨 4백만원 이상의 피해를 보았다. 4인 가족이 함께 사는 곳이기 때문에 주변 이웃들에 비해 피해가 큰 편이었다.

그러나 文씨가 지급받은 지원금은 수리비 90만원과 추가 지원금 60만원을 포함한 1백50만원. 가구마다 피해 정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침수신고를 한 모든 가구에 동일하게 지급된 것이다.

2년째 침수피해를 본 강서구 경인유통상가 주변 주민들은 "같은 곰달래길에서도 지형의 높낮이가 달라 피해 정도가 판이하게 달랐다"며 "높은 쪽에 살아 피해가 거의 없었던 주민들도 신고를 해 똑같은 액수의 지원금을 받았다"고 불평했다.

광진구청 관계자는 "동사무소 직원과 함께 실태조사를 나갔지만 실제 침수 여부와 침수 가구의 방·거실·창고를 구별하는 수준"이었다면서 "현재 상황에서 정확한 피해액수까지 집계하려면 더 많은 인원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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