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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복학생들 방 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2000년 서울대를 졸업한 李모(26·여)씨는 유명 통신회사를 다니다 올해 초 그만두고 대학원 진학을 위해 캠퍼스로 돌아와 공부 중이다. 李씨는 당시 취업시장이 얼어붙었던 터라 덜컥 직장을 잡을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성급하게 택한 직장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다.

2년 만에 돌아온 교정은 李씨에게 그리 낯설지 않았다. 그와 같은 처지의 여자 졸업생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李씨는 "여자 졸업동기 30여명 가운데 6명 정도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 진로를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의 여파로 적성을 가리지 않고 취직을 위해 허겁지겁 사회로 밀려나갔던 98~2000년도 여자 졸업생들이 대거 학교로 되돌아오고 있다.유학·고시·대학원 진학 등 새로운 도전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연세대의 경우 올 1학기에 도서관 사용을 희망해 출입증 발급을 신청한 여자 졸업생이 1백20여명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배로 늘어난 것이다.

이들의 주요 근거지는 학과 사무실인 과방과 동아리방. 딱히 갈 곳이 없는 데다 아는 얼굴들이 많고 편하기 때문. 서울대 한 어문학과의 과방은 아예 여자 졸업생들이 점령, 실버타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학부 재학생들은 학과 운영이나 후배지도 등에 적극적인 이들을 '왕누나' '왕언니'라고 부른다.

일부 왕누나들은 그동안 재학생 사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남자 복학생들의 자리까지 밀어내고 있다. 고대 학보사 기자 권민정(20·가정교육)씨는 "일부 과의 경우 졸업생 언니들이 학교 전통을 살린다며 복학생 오빠들을 집합시키기도 하고, 술자리에서 노래도 시킨다"고 전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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