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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진이'를 아느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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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누구나 나를 안다.하지만 아무도 나를 모른다." 16세기 조선조 명기(名妓)황진이의 탄식이다. 아니 평론가이자 소설가인 김탁환(건양대 문화영상정보학부)교수가 던지는 화두다. 문학비평집 『소설 중독』 외에 장편소설 『허균, 최후의 19일』 등을 선보여왔던 작가가 이번엔 '지식인 황진이' '시인 황진이'를 되살려내는 시도를 했다. 주자학의 틀이 채 고착되기 전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조선 중기 사회 분위기도 포착된다. 따라서 역사소설이란 장르 구분을 넘어 역사서술의 방식인 미시사(微視史)분야의 열매라고 해도 좋을 듯싶다.<관계기사 39면 '트렌드 따라잡기-미시사'>

황진이는 유명한 만큼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 뛰어난 글 솜씨로 이름을 남긴 몇 안되는 조선조의 여류 문인이다. 지족선사·서경덕과의 일화 등 대담한 남성 편력을 보인 기생으로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당연히 매력적인 이야기감이어서 소설 작품도 적지 않았다. 이태준의 『황진이』가 대표적으로 정한숙·박종화·안수길·정비석 등도 '기생 황진이'를 그려냈다. '그렸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황진이에 대한 사료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대부가 아니니 문집·행장(行)이 있을 리 없고, 권력다툼에 끼어든 바 없으니 왕조실록에도 이름이 비치지 않는다. 다만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이덕형의 『송도기이』(松都奇異), 허균의 『성옹지소록』(惺翁小錄)등에 단편적으로 언급된 것이 전부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황진이를 다룬 작품은 거개가 그의 풍류에 맞춰진 감이 없지 않다. 인간 황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기에 미흡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김탁환 버전 황진이는 여러 모로 다르다.

우선 자료 수집과 사료(史料)비판이 철저하다. 황진이의 행적, 관기 아전제도, 송도 지리에서 당시(唐詩)·도학(道學)까지 1백여종의 책·관련 논문을 살펴 황진이가 살았던 조선 중기의 문화 지형을 복원했다. 참고 문헌만으로 따지면 학술논문 수준이다. 소설 본문은 일단 같지만(삽화는 뺐다) 각 면의 밑에 6백여개의 주석을 보탠 주석판은 더욱 그렇다. 이런 고증을 바탕으로 황진이의 가계(家系), 기생이 된 이유에서 서경덕 학파의 대모(代母)가 되기까지 등을 새롭게 해석하며 '조선 중기의 지성사 복원'에 근접하고 있다. 여기에 안대회(한문학자·영남대)·정재서(중문학자·이화여대)교수 등 감수·발문에 참여한 면면을 보면 '학제(學際)연구의 소산'이라는 말도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이 작품을 읽음으로써 수십 수백권의 서책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을 것"이란 말도 빈말이 아니다.

『나,황진이』는 역사소설로서는 드문 1인칭 소설. 서경덕의 사후 동문수학했던 허태휘의 요청을 받아 황진이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서한의 형식을 취했다. 당연히 극적인 사건이나 남자들과의 사랑놀음은 없다.대신 신분에 대한 고민, 시와 음률에 대한 열망, 시대에 대한 분노, 개성에 대한 애정 등 인간 황진이가 가졌을 법한 내면세계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

"나의 삶이란 공명정대한 법에 대하여, 지극히 온당하며 인간의 도리를 일깨운다는 관습과 예절에 대하여 던지는 질문에 다름아니었어요." "남정네들은 은밀한 즐거움만 품고 있었지 끝끝내 나의 깊고 먼 눈동자를 들여다보지 않았지요." 황진이의 독백 어느 하나 소홀히 흘려 들을 대목이 없다. "정치란 명(名)을 세우는 것"이라는 등 서경덕과의 대화나 "학문을 하면서 사물의 원리를 먼저 궁구하지 못한다면 독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하는 구절은 오늘과 맞닿아 새겨들을 만하다.

운문과 산문을 교합한 작품의 문체 또한 단아하고 곱다. 우리 고어(古語)와 고사성어를 적절히 섞어 고풍스러운 맛을 살려냈다. 문장 하나 하나가 시가 되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땀이 느껴진다. 나비잠(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편히 자는 잠), 비꽃(비가 오기 시작할 때 몇 낱씩 흩날리는 빗방울), 먼지잼(조금 오다 마는 비), 윤똑똑이(저만 잘나고 영리한 체하는 사람), 나무거울(겉보기는 괜찮은데 아무 소용이 없는 물건) 등 보석 같은 우리 말을 만나는 것도 작지 않은 즐거움이다. 비록 낯선 표현이 책읽기를 적잖이 방해하는 것도 사실이지만,공들여 읽고 나면 잘 차려진 한 상을 대접받고 난 마음이다.

갈수록 문학이, 특히 소설이 힘을 잃어간다는 지적이 문단 안팎에서 나온다.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지만 소설보다 기구한 삶이 적지 않은 현대사회에서 곱씹어볼 만한 인문소설이 많지 않은 것도 한 까닭이 아닌가 한다. 단순한 재미와 감동에 더해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처럼 지식을 보태고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 작품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풍부한 자료만큼, 그리고 문사철(文史哲)을 아우르고 있다는 장담처럼 이를 작품에 충분하게 녹여냈는가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김택환은 이런 가능성을 개척하고 있는 작가로 보인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설 쓰기에 대해 "상상력은 책과 램프 사이에서 나온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인용만으로 가득찬 작품을 꿈꿔왔다고 쓰기도 했다. 2백자 원고지 1천5백장 분량의 소설을 쓰면서 1천5백장의 주석을 단 작가 김탁환. 작가의 고집을 수용해 인문학 연구자들을 위한 별도의 주석판 소설을 펴낸 출판사의 탄력성. 우리 출판사상 첫 실험의 결실을 덮으면서 '역사와 소설의 포옹'이라는 책 표지의 구절이 근거가 있어 보였다.

1990년대 초부터 조선조 인물 10여명을 다시 보는 일련의 작품을 구상, 집필해 왔다는 작가가 연내 선보일 예정이라는 새 작품 김만중편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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