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국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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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정치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난다. 대의명분보다는 당리당략과 사적인 이해득실만 따지는 지극히 편협하고 이기주의적인 사고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정치다. 그러나 그 어지러운 와중에서도 한국정치가 이념적인 대립구도를 갖춰나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념적 구도란 무엇인가?

우리는 바야흐로 국가·시장·계급의 삼자가 대립하는 정치구도를 향해 가고 있다. 우선 한국에서는 지난 40년 동안 '국가주의'이념이 절대적인 우위를 지켜왔다. 국방과 안보, 경제발전이 '국가주도형'이었음은 물론 교육과 가치관,사생활의 미세한 부분까지 국가가 모든 것을 주도해 왔다. 그 결과 군인·관료·경찰과 같은 국가의 조직들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고 다른 모든 부문들은 이들에게 복속됐다.

그러나 개발국가는 1970~80년대를 지나면서 심각한 '도덕적 해이'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안보와 경제발전의 이름으로 참정권과 경제권의 제한을 정당화시키던 체제는 독재와 인권유린을 자행하면서 정통성을 상실해 갔다.그리고 결국 80년대 후반의 민주화, 90년대 초반의 세계화 물결에 휩쓸리면서 국가는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반면 국가주도형 경제발전 전략이 실효를 거두면서 탄생한 노동자 계층은 '계급의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군·관·경을 동원해 자신들을 착취하고 노동권과 참정권을 억압하는 국가와 그 국가가 주도적으로 탄생시킨 독점적 자본주의 체제를 상대로 투쟁을 전개한다. 그 결과 노동계급은 전국민이 경제권과 참정권을 쟁취하는 데 기여를 하며 개발국가가 양산한 불평등 구조를 어느 정도나마 완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그러나 노동계급 역시 공룡화하면서 노동자들의 이익보다는 노조의 이해관계에 집착하게 되고 국가보다는 계급의 이해를 도모하면서 결국 국가 경쟁력의 저하에 일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계급주의는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 북유럽식 복지국가의 경제위기와 더불어 그 적실성을 상실한다.

국가와 계급이 서로 투쟁하고 있던 와중에 국가주의와 계급주의가 위기에 봉착하면서 시장이 그 대안으로 부상한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금융환란을 겪으면서 한국은 외국인 투자를 과감하게 유도하고 시장 점유율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월가의 시장 중심적 사고를 급속히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개혁은 상당한 효과를 거두면서 경제가 회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시장의 자율에만 맡길 경우 얼마나 엄청난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월드컴과 엔론사태, 국내 UBS 워버그와 메릴린치의 조사자료 사전유출 사건 등을 통해서 보고 있다. 한국의 '정실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자처하던 미국의 유수 기업인들이 더 엄청난 규모의 분식회계, 내부자거래와 같은 천민 자본주의적 작태를 서슴없이 자행해 왔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국가·계급·시장 중 어느 것이 주도권을 잡는 체제가 가장 좋을까?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발전단계를 볼 때 우리에게는 아직도 국가 주도형 체제가 필요하다. 물론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가 제왕적 대통령을 필두로 한 과대한 국가와 관료적 부패라고 한다. 이는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계급도, 시장도 그 대안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 시장이나 계급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목표인 계급보다는 국가 전체의 이익을 염두에 두는 도덕적인 국가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국가가 또다시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으면서 계급과 시장을 적절히, 공정하게 조정할 수 있는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형태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념과 체제, 가치관의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는 '전환기', 그리고 모든 것이 변하고 있는 '변혁기'에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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