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화해 가속화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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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늘은 광복 57주년을 맞는 날이다. 해방 이후 우리 민족은 외세의 개입과 내부 분열로 통일된 민족국가를 건설하지 못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가 20세기 말까지 통일된 근대 '국민국가(nation-state)' 건설을 완성하고 주권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21세기가 열린 지금까지 소모적인 분단체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민족은 같은 지역에 살며, 혈연·언어·문화·생활양식 등을 공통으로 하는 사회집단이다. 그런데 남과 북은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면서 서로 다른 생활권으로 나뉘어 살아온 지 어언 반세기가 지나면서 같은 민족의 징표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분단 이후 두 세대가 지나면서 우리 민족은 '자본주의 민족'과 '사회주의 민족'으로 각각 서로 다른 인간형으로 정치사회화 됐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시급한 과제는 남과 북이 '서로 다름'을 인정한 가운데 많은 인적·물적 교류협력을 통해 동질성을 회복해 나가는 것이다.

정상회담 이전 남북한은 '적대적 의존관계'란 틀 속에서 상대를 부정하는 데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자폐적 정의관'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러나 남과 북은 2000년 6월 첫 정상회담에서 적대적 의존관계를 청산하고 '호혜적 상호의존관계'로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기로 약속했다. 남과 북의 정상들이 통치권 차원에서 실정법을 초월해 만든 6·15 공동선언을 제도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 북한의 군사도발, 남한 내부의 남남갈등 등의 변수가 영향을 미치면서 남북관계는 정체국면을 면치 못했다.

다행히 제7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 이행의지를 재확인하고 남북관계를 원상회복하는 일련의 합의를 이뤄냈다. 남과 북은 그동안의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4·5 공동보도문' 이행과 이산가족문제 해결, 군사적 신뢰구축 등 남북화해·교류협력과 관련한 다양한 갈래의 접촉과 대화를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서해교전으로 교착됐던 남북관계는 다시 급진전할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은 당국간 대화와 함께 8·15 민족통일대회와 부산아시안게임 참가 등 사회·문화교류에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오늘부터 서울에서는 남북관계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 각계를 대표하는 주요 인사 1백16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공동의 8·15 민족통일대회가 열린다. 북한은 '민족대단결론'과 6·15 공동선언에 따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을 실현한다는 '민족공조' 논리에 따라 사회·문화 교류를 적극화하려 한다. 북측이 체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감수하면서까지 남북 교류협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는 세가지다. 첫째, 북한은 무엇보다 민족공조를 통해 외세로부터 오는 위협을 피하려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북한은 남한의 김대중(金大中)정부 임기 내에 남북관계 원상회복을 통한 6·15 남북공동선언 이행 기반을 마련해 놓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북한이 내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경제재건 계획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진전을 통한 대외관계 확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원상회복에 나선 남북한의 의도가 어디에 있건 남북간 접촉과 대화를 통한 교류협력이 많아지면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민족동질성 회복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교류협력과정에서 우리가 북쪽에 일방적으로 '퍼주고' 이용당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그러나 남북간 체제경쟁은 이미 끝났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 세계화가 진행되는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사회주의 민족'이 '자본주의 민족'을 압도할 수 없다. 이제 월드컵 때 보여줬던 우리 국민의 단합된 역량을 통일역량으로 승화시켜 민족통합을 앞당겨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마련한 '민족화해의 장'이 '남남갈등의 장'으로 전환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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