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응원 열기 여자축구에도 눈길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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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치마보다는 바지를 즐겨 입고 축구를 좋아하던 나라(16)라는 친구가 있었다.

나라는 자신을 따돌리는 동네 남자 아이들 틈에 끼어 축구를 하려고 때론 주먹다짐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바라던 대로 충주 예성여자중학교의 축구부에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는 축구를 그만둬야 했다.

"여자가 무슨 축구냐, 축구해서 먹고 살 수 있느냐"는 부모님의 반대를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예성여자중·고등학교 축구부에는 열심히 축구장을 달리는 또래 소녀들이 있다.

이 학교 축구부는 올해로 창단 10년째를 맞고, 전국에서 4강 안에 드는 수준이다. 그러나 선수들을 다 합쳐봐야 한 팀을 겨우 구성할 정도다. 경기 중에 한명이라도 부상하면 대체할 후보가 없다.

주변 여건보다 선수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이다.충북에서 하나뿐인 여자 축구팀인데도 팀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

선수들은 응원과 격려의 목소리에 목말라 하고 있다. 예성여자고등학교(교장 홍진삼) 축구부를 6년째 맡아온 이종문(42) 감독은 "하루가 다르게 기량이 성장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기쁘기 그지없다. 그러나 졸업하는 선수를 충원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크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실제로 충북 지역 초등학교에선 여자 축구팀을 운영하는 학교가 없어 예성여중의 경우 해가 갈수록 팀을 구성하는 데 애를 먹는다. 그 바람에 예성여고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예성여고 축구부 주장 안태화(18)양은 "우리나라에 실업축구팀이 실질적으로는 두개밖에 없어 취업이 어려운 데다 고된 훈련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번씩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월드컵에서 열광하며 응원을 주도한 것은 분명 여자 축구 팬들이 더 많다. 그러나 그 열기는 오로지 유소년 축구 발전에만 돌아갔다. '유소녀 축구'는 아직 얼음장 같다.

(본지 학생 명예기자·충북 충주여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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