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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금융개혁법안, 중앙은행 자존심 꺾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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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혜택을 많이 받게 된 미국의 금융 소비자들과는 달리 제정 과정에서 가장 많은 수모를 당한 기관은 미국 연방준비은행이다. 금융위기에 앞서 연방준비은행이 감독기관으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 그리고 위기관리 및 구제금융을 집행하는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는 강한 불신이 법안에 그대로 담겨 있다.

첫째, 금융안정협의회의 구성 방식을 보면 그런 면이 잘 나타난다. 대형 은행과 비은행 회사 및 지주회사의 도산에 따른 금융시스템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금융안정협의회는 재무장관을 의장으로 10명의 감독기구 수장으로 구성된다. 향후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할 사태가 발생할 경우, 긴급유동성 공급은 연방준비은행이 하되 지원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동시에 반드시 재무장관의 서면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연방준비은행의 재량권이 상대적으로 축소된 것이다.

둘째, 소비자보호청의 운영 방식도 그렇다. 법안은 소비자보호청을 미국 연방준비제도에 설치하도록 했다. 언뜻 연방준비은행의 로비가 승리한 것 같지만, 소비자보호기구 관련 법안 내용을 살펴보면 실상은 전혀 다르다. 소비자보호청 직원의 복지와 기금 형태의 예산만 연방준비은행이 마련토록 했을 뿐, 인사 및 예산은 철저히 독립돼 있다. 소비자보호청장의 임명은 대통령이 의회의 동의를 얻어서 하며, 청장은 연방준비은행과 관련된 직책의 겸직이 금지된다. 또한 소비자보호청은 12개 연방준비은행이 설치된 지역에 소비자보호 관련 별도의 지점 및 사무소 설치를 포함, 모든 금융소비자보호관련 법령 및 규정의 제·개정, 검사, 조사, 제재 권한을 보유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소비자보호청 내에 연구조사 부서의 신설을 명문화했으며, 필요 시 연방준비은행을 포함해 모든 연방감독기구에 소비자보호 관련 연구조사 정보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연방준비은행에서 편성된 기금예산과는 별도로 2010년부터 4년간 매년 2억 달러의 예산을 의회에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비자보호청은 연방준비은행과는 완벽하게 독립된 기관인 것이다. 이는 과거 연방준비은행이 집행하던 소비자 관련 감독권이 분할됐음을 시사한다.

셋째, 연방준비은행의 지배구조도 개편됐다. 여기엔 연방준비은행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불신이 담겨 있다. 금융개혁법은 연방준비은행 총재 선출권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및 연방준비은행 가맹은행이 선임한 공익대표에게만 부여했다. 연방준비제도 가맹은행이 선임한 업계 대표는 배제한 것이다. 구제금융기관의 자의적 선정 등 의사결정에서 연방준비은행이 가맹은행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불신을 엿볼 수 있다.

넷째, 연방준비은행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장치가 대폭 확대됐다. 법안은 연방준비은행의 구제금융 선정 및 집행 절차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의회 감사원의 감사를 규정했다. 또 연방준비은행의 공개시장 운용, 재할인 대출 등에 대한 세부내역을 2년마다 공개하도록 했다. 연방준비은행에 대한 의회 견제권이 대폭 강화된 것이다. 당초 법안이 의회에 제출됐을 때 상원 금융위원장은 이번 금융위기가 분화된 감독구조를 단일 감독기구로 개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연방준비은행에 대한 권한 이양을 반대한 바 있다.

법안 제정 과정에서 거의 굴욕적인 수모를 당한 미국의 중앙은행과 미국식의 분화된 금융감독 및 규제 시스템을 우리 실정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도드·프랭크 법안에서 불거진 여러 문제점을 우리의 입장에서 면밀히 검토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장범식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