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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고문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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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판사와 검사들이 '영감'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본디 정 3품과 종 2품 벼슬아치를 일컫던 말이니 그만큼 존경의 뜻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피의자가 그런 검사 앞에 선다면 당연히 주눅 들고 작아질 수밖에 없다. 거짓 진술을 했다간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다. 법원에서도 피의자가 검찰 조서에 서명.날인한 경우 이를 유죄의 증거로 인정해 왔다.

그러다 보니 자백이 증거의 왕으로 여겨졌다. 수사기관에선 객관적인 증거를 찾기 어려울 때 자백 수사에 의존했다. 목격자 등이 있다 해도 피의자의 자백보다 확실할 수는 없다. 사람의 기억력이란 한계가 있어 오래전의 일을 정확히 떠올리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수사 관행이 결국 고문과 인권 침해를 불러왔다.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과 권인숙씨 성고문사건,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현 보건복지부 장관) 고문사건 등이 그 사례다. 지난해 12월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의 조선노동당 입당설을 둘러싼 여야 공방 때는 과거 공안사건 연루 의원들이 '고문의 추억'을 쏟아냈다.

그런 점에서 사법부와 검찰은 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피의자.피고인들의 가혹행위 주장에 귀를 막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고문 등에 의한 자백은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 규정은 법전 속에 묻어 뒀던가. 이제라도 '그때그때 달라요'식의 법 적용이었음을 고백할 수는 없을까.

얼마 전 대법원이 인권 보호를 위한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검사가 작성한 신문 조서에 피의자의 서명.날인이 있더라도 그 내용이 피고인이 말한 대로 기재돼 있다고 인정될 때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이 1984년부터 유지해 오던 판례를 바꿔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한 것이다. 이에 따라 검찰에선 조사실 개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녹음.녹화장비뿐 아니라 외부에서 조사 과정을 모니터할 수 있게 하고 검사 신문실엔 변호인석도 마련했다.

미국의 인권 보호장치들은 대부분 연방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확립했다. 기드온 대 웨인라이트 사건(63년), 미란다 대 애리조나 사건(66년) 등이 그것이다. 플로리다의 한 당구장에서 절도 혐의로 체포된 기드온은 법정 변호사를 요구했으나 중대 사건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원에서 거부당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자력으로 변호인을 선임할 여력이 없는 피고인에게 주(州) 정부가 반드시 변호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이 법정에서의 '국선 변호인제'를 요구한 판결이라면 미란다 사건은 체포 단계에서부터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미란다는 유아 유괴 및 강간 혐의로 체포돼 애리조나 주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인물이었다. 그런 흉악범이 훗날 인권 수사의 교범으로 자리 잡은 '미란다 원칙'을 이끌어낸 장본인이 됐다는 것도 흥미롭다.

자백 위주의 수사는 어느 나라에서든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민주화 진행이 빨랐던 서방 국가들도 프랑스혁명 이전까진 자백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고 한다. 이후 수사 절차상의 위법이나 권리 침해 등을 이유로 자백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판례를 확립해 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사회에서 고문이나 인권 침해가 사라졌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사건에서 보듯 어쩌면 인간 내면에 잔학성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사실 개조만으로 인권 침해를 막지 못한다. 수사 담당자들의 의식 전환과 사법 절차를 통한 감시가 없다면 고문은 언제든 추억이 아닌 현실로 되살아날 수 있다.

신성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