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풍요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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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새해의 바람이 경제로 모아졌다. 언론의 신년 특집도 어떻게 하면 경제를 살리느냐에 집중되어 있다. 여러 처방도 제시됐다. 병을 고치려면 의사의 처방이 중요하다. 그러나 환자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경제도 달라진다. 모든 다툼의 근원은 더 많이 차지하려는 데 있다. 돈도, 권력도, 명예도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데서 싸움이 시작된다. 더 많이 가지려는 이유는 그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데서 서로 많이 가지려니까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 빼앗아 나눠주면 점점 가난해져

노사갈등이니, 계층갈등이니 하는 문제도 부족한 데서, 더 많이 가지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경제도 그렇다. 부(富)나 재화가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에 빠져 있으면 싸움은 그치지 않는다. 나눌 떡은 일정한데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이 가지면 나는 적게 가질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분배의 정의가 힘을 받는 이유도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이다. 그 최고의 형태가 공산주의이다. 해결방법은 있는 사람 것을 빼앗아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이렇게 빼앗는 순간부터 사회는 점점 가난해진다. 빼앗는 바로 그 순간이 부의 정점이다. 정복자가 타국을 침략하여 약탈한 것을 나누어 가지면 그 순간은 부자가 된다. 그러나 그 순간뿐이다. 그것으로 영원히 부자가 된 예는 없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계속 부자로 살려면 계속 빼앗아야 하는데 빼앗을 부자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분배의 모순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빼앗지 않고 같이 살아가면 부는 점점 더 커진다. 부나 재산이 일정량 한정된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우리는 구태여 싸울 이유가 없다. 모두가 이런 생각으로 임하면 부는 무한정 늘어난다.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주고 내가 필요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장이고, 생산이고, 무역이다. 이러한 공생은 부를 점점 더 크게 만든다. 불과 100~200년 전을 생각해 보라. 과연 지금 같은 부유한 세상을 꿈꿀 수 있었는가. 만일 부가, 재물이 일정하여 다른 사람 것을 빼앗아야만 했다면 지금 같은 풍요는 오지 않았다.

우리 경제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었는데 유독 한국만 지난 2년간 세계 평균 성장률을 밑돌았다. "불안심리를 없애야 한다" "부자들의 주머니를 열게 해야 한다"는 말이 왜 나오는가. 바로 이 정부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부나 재산은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니 이를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더 나쁜 것은 그것이 정의이고, 자신들은 그런 거룩한 사명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부는 한정되어 있지 않다. 부와 재화는 시장을 통해 무한대로 커져 간다. 이것이 시장의 비밀이다. 물론 부자들의 금도(襟度)도 필요하다. 끝없는 욕심만 있다면 시장은 성립 안 된다. 그때부터 시장은 부자들의 약탈장이 되는 것이다. 국가 임무는 그런 약탈행위를 감시하는 것이다.

또 하나 믿어야 할 것은 세상에 가치있는 것이 재물과 돈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정부 들어서 우리 생각을 병들게 한 것은 빈부 문제가 세상의 모든 것인 양 확대해 놓은 것이다. 부자 미워하기, 강남 때리기, 일류학교 학대하기…. 이 저류에는 부자에 대한 미움이 있다. 부자가 되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진 않았을 텐데 "독립운동 한 사람은 3대가 가난하고, 친일한 사람은 3대가 떵떵거리고…"라며 독립운동을 천박한 부자타령으로 바꾸어 놓았다. 세상은 돈 말고도 가치있는 일이 많다. 예술가는 가난해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교육자는 소박하게 살아도 후진을 길러내는 보람에 산다.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는 다르며, 다른 가치 역시 소중한 것이다. 돈 때문에, 물질 때문에 만인이 투쟁하지는 않는다.

*** 추구하는 가치의 차이 인정해야

이것이 바로 다양성의 추구이다. 이는 시장의 비밀과 연결되어 있다. 만일 모든 사람이 똑같은 가치만 추구한다면 얼마나 살벌할까. 그러나 개인마다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면 싸울 필요가 없다. 각자의 영역을 극대화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 여러 가치가 시장을 통해, 혹은 공동체를 통해 합해질 때 우리는 무한대의 성장을 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 시장의 비밀과 다양성의 비밀을 깨닫게 되면 경제는 저절로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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