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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네덜란드·프랑스계의 동거 벨기에 : '공존의 법칙'통하는 한 지붕 두 민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지금까지 실린 글>

1.시리즈를 열며… 9·11폐허에서

2.공존과 충돌사이:타지키스탄

3.동서 문명의 다리:우즈베키스탄

4.절반의 유럽, 절반의 아시아:러시아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중심가의 고색창연한 건물로 둘러싸인 그랑플라스('큰 광장'이라는 뜻).빅토르 위고가 집필활동을 하고,카를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 을 쓸 당시 머물렀다는 건물들(지금은 카페)이 있는 광장이다. 여기의 한 골목에 있는 유명한 '오줌싸개 소년' 동상에 이르기 직전 조그마한 와플 가게에서는 여러 지역에서 유래한 와플을 맛볼 수 있다.

취재진이 프랑스어권 루뱅대학에서 만난 앙드레 폴 포니에 교수는 '벨기에 와플 현상'이라는 말을 먼저 끄집어냈다.이는 두 겹의 반죽을 마주 붙여 구워 만든 와플처럼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두 개의 민족이 조화롭게 사는 벨기에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두 지역의 이름은 '플랑드르'(인구의 58%, 약 5백94만명)와 '왈롱'(인구의 32.6%,약 3백34만명)이다. 플랑드르에 사는 사람은 플라망족(族), 왈롱에 사는 사람은 왈롱족(族)이다. 플랑드르는 플라망어를, 왈롱은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파리에서 E19번 도로를 통해 브뤼셀로 오는 길 주변의 푸른 녹지와 잘 정돈된 농가에선 이들의 갈등을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브뤼셀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눈길을 끈 것은 플라망어와 프랑스어로 이중 표시돼 있는 거리의 표지판들과 각 지역을 대표하는 형형색색의 깃발들이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볼수록 벨기에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다. 취재진이 들른 국영방송국이 대표적인 예다. 같은 건물을 쓰면서도 놀랍게도 플라망인과 왈롱인이 따로 사용하는 두개의 입구가 있었고 방송도 서로 다른 채널을 통해 2개의 언어로 송출되고 있었다. 명문인 루뱅대학도 플랑드르의 플라망어계 캠퍼스(KUL)와 왈롱의 프랑스어계 캠퍼스(UCL)로 다른 위치에 나뉘어 있었다.

이 외에도 정부·정당·학교·노조·병원 등 주요 기관이 모두 두개로 나뉘어 있다. 두개의 건물로 나뉘어 있지 않은 외무부의 경우도 벨기에 국기 좌우에 플랑드르와 왈롱의 기(旗)를 걸어놓을 정도였다.

어느 사회든 결혼은 사회적 관계의 압축적 표현이다. 프랑스어권 루뱅대 캠퍼스에서 만난 안 실비 베르크(26·여)는 "그 숫자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서로가 사귈 수는 있어도 결혼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이들 두 민족이 주거하는 지역의 경제적 격차 또한 크며 상대적으로 부유한 플랑드르는 더욱 불만이 많고 지역분리주의의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벨기에가 하나의 국가공동체 안에서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평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취재진엔 거의 미스터리에 가깝게 느껴졌다. 전광호 루뱅대 한·벨기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반 농담조지만 "플랑드르와 왈롱이 벨기에인임을 느끼는 것은 왕가의 행사를 참관할 때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축구팀을 응원할 때"라고 말한다.

이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퍼즐의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이것은 정치학의 중요한 연구대상이기도 하다. 네덜란드계 루뱅대의 바트 마덴스 교수는 그 이유를 균열이 중첩되지 않은 것에서 찾는다. "지역과 종교(가톨릭-비가톨릭)의 균열이 중첩돼 심각한 갈등을 초래한 북아일랜드의 경우와 대조적으로 언어·민족 이외에 계급·종교 등 다른 종류의 균열이 없어 양자의 공존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것이다.

정치학자 아렌트 레입하트는 벨기에 모델의 성공 요인으로 협의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정치제도를 들고 있다. 협의민주주의는 승자가 독식하는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와 달리 다수와 소수가 타협으로 공존할 수 있는 제도다. 정부가 모든 분파집단들의 연합으로 구성되는 것은 물론 정치적 대표와 관료 임명 및 재정 분배에서도 비례대표제가 적용된다. 나아가 분파집단의 문화적 자율성을 보장하는 연방제도와 소수분파의 비토권 인정을 그 특징으로 한다.

벨기에 비영리 부문(NPO)의 활동이 활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각 언어공동체 내부에 국가를 대신해 비영리 부문이 자율적으로 갈등을 조율해 나가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나름의 방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벨기에 비영리 부문의 상대적 규모가 세계 3위며 비영리 부문 종사자들은 전체 고용의 10.5%에 이르고 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런 제도가 뿌리내릴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다. 포니에 교수는 "이들은 역사적으로 협조가 아니면 공멸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공존의 지혜를 키워왔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문화가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엘리트들이다. 벨기에에서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는 소속집단에서 협상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자질이 가장 중요하다.

유럽에서 '벨기에 협상가' 하면 유명하다.브뤼셀에서 가장 현대적인 건물인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본부도 이들의 협상가적인 기질을 발휘해 유치할 수 있었다.

타협과 공존을 중시하는 문화는 벨기에 왕가의 에티켓에서도 잘 나타난다. 벨기에 국왕을 비롯한 왕족들은 플라망어와 프랑스어에 공히 능통해야 하며 모든 연설은 두 언어로 반복해 이뤄진다. 플라망어에 미숙한 왈롱계 왕세자비의 자격조건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으며,국왕의 자녀들은 플랑드르와 왈롱 학교에 번갈아 다녀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다.

혹자는 벨기에의 모델은 진정한 갈등의 해소나 차이의 융합이 아니라 단순히 갈등의 회피에 불과하며 나아가 갈등이 고착화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마덴스 교수는 플랑드르와 왈롱의 동거는 '편의에 의한 동거'지 '확신에 의한 동거'가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각 분파를 만족시키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고비용의 문제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벨기에의 사회적 균열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갈등을 관리하며, 공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취재기간 내내 '플랑드르와 왈롱의 동거'가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협의의 제도와 공존의 문화'의 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벨기에=김의영(경희대·정치학)·이동수(경희대·정치철학)교수,김창호 학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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