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공민학교 졸업생도 검정고시 보라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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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돋보기까지 쓰고 만학의 구슬땀을 흘리는 할아버지·할머니들에게 시험에 붙어야만 졸업장을 주겠다는 것은 배움의 희망과 기쁨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고등공민학교 졸업자에 대해 '검정고시 규칙'을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최근 헌법소원을 낸 전북 전주시 진북고등공민학교 송헌섭(宋憲燮·52)교장. 그는 "3년에 걸쳐 일반 중학교와 똑같이 출석일수(1년 1백70일)를 지키고 필수과목(12개)을 모두 배우는 데도 다시 자격시험을 보라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인 평등권과 행복 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宋교장은 가정형편 등으로 학교 문턱을 밟지 못한 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고등공민학교를 2대째 운영하고 있는 교육독지가다.

고등공민학교는 한국전쟁 직후 잇따라 생겨나 1960년대에는 한때 전국에 6백여개가 됐었지만 현재는 진북고등공민학교가 유일하다. 이 학교는 그의 부친인 고(故)송동석(宋東錫)씨가 52년 전주 주둔 미군정청 건물을 빌려 배움터를 열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문맹자를 위한 한글·국민계몽 교육을 주로 했지만 학생수가 많아지면서 초·중학 과정을 무료로 가르쳤다.

아들인 宋교장은 대학 졸업 직후인 20대 후반 이 학교의 평교사로 일을 시작한 뒤 올해로 23년째 학교를 이끌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분필 한자루,연필 하나 지원받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두 한켤레로 15년을 신고 손수건 한장을 1년씩 쓰는 근검절약 정신과 직접 벽돌을 찍어 건물을 올리는 열정으로 한때 3천8백여평 학교 부지에 12학급의 규모로 키우기도 했습니다."

宋교장은 70년 후반에는 송사에 휘말려 대부분의 땅을 잃어 문을 닫을 뻔도 했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간 학생은 줄잡아 8천여명에 이른다. 현재도 60대의 할머니를 비롯해 30~50대 아저씨·아주머니 등 40여명이 중학교 과정을 교육받고 있다. 학생 중에는 '배움에 맺힌 한'을 풀기 위해 3시간 이상씩 걸리는 통학길을 마다않고 달려오는 사람들도 있다.

宋교장은 "50여년전 만들어져 아직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검정고시 규칙이 하루빨리 시대 상황에 맞게 개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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